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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회 > 여론
2021.12.01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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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돋보기] 희년의 정신을 시복시성 기도로
이정훈 필립보 네리(신문취재부 기자)


맏이가 순교하자, 둘째의 땀방울이 전국에 떨어졌다. 천주학쟁이로 손가락질받던 교우들이 그토록 원했던 첫 사제 김대건 신부가 주님 품으로 가고 난 뒤, 유일한 조선인 사제로 홀로 남은 최양업 신부는 조선 팔도 5개 도에 흩어져 있는 127개 교우촌을 해마다 7000리(2800㎞)를 걸어 사목했다. 김대건 신부가 피의 순교자라면, 최양업 신부는 땀의 증거자였다.

1849년 12월 추운 겨울, 김대건 신부에 이어 조선에 입국한 최양업 신부는 전교활동에 적극 매진했다. 가혹한 박해의 시련 속에 오로지 사제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각지의 교우들을 찾아다녔다. 그에게 박해의 공포는 신앙의 고결함과 교우들을 향한 사랑을 절대 앞지를 수 없었다. 오랜 염원 끝에 사제를 맞이한 교우들의 기쁨은 얼마나 컸을까. 그러나 최양업 신부는 1861년 교우촌을 방문하는 길에 극심한 과로와 장티푸스, 식중독이 겹쳐 2주 뒤 선종했다. 불과 11년 6개월 사목한 마흔의 사제였다.

한국 주교단은 지난 10월 가을 정기총회 후 가경자 최양업 신부의 시복을 위한 신자들의 더욱 적극적인 시복 염원 기도를 요청했다. 동시에 최양업 신부의 교황청 시성성 기적 심사 통과를 위해 그의 전구로 기적적인 치유를 경험했거나, 그 사실을 아는 이들의 제보를 받고 있다.

피와 땀으로 굳건해진 한국 교회는 지난 한 해 두 사제의 탄생 200주년을 기리고, 그들의 신앙적 모범과 행적을 기리는 희년을 보냈다. 이미 우리는 모두 가경자의 행적 자체를 기적으로 여기며, 깊이 섬기고 있다. 그러나 나아가 지금 우리의 기도가 또 다른 기적을 낳아 더 많은 이가 그를 공경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앞선 사제를 향한 우리의 작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180여 년 전, 한 사제가 심어놓은 깊은 사랑에 화답하는 일은 우리의 정성과 기도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