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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우리교구,대리구
2021.04.06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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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중)

수도회 인준 후 작은 형제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1219년 돗자리 총회에는 수천 명이 참석할 정도였다. 성인은 글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주님의 기도를 반복해 바침으로써 수도 생활을 할 수 있는 보편적인 길을 열어주었다.

이로써 작은 형제회는 자유와 평등을 바탕으로 하는 그의 인본주의 사상과 더불어 유럽 사회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결과적으로 사회 전반에 하나의 혁명처럼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서구 문명의 중요한 동력으로 자리 잡게 된다.

성인의 회개 생활은 1224년 라 베르나(La Verna)에서 절정을 맞는다. 그해 십자가 현양 축일 즈음 프란치스코의 몸에 오상(五傷)이 신비적으로 새겨졌다. 신비 작가들은 이를 프란치스코의 몸과 영혼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표현하고 제2의 그리스도(alter Christus)로 묘사했다.

그는 1226년 10월 3일 포르치운쿨라 성당에서 동료 형제가 요한복음 수난기를 낭독하는 가운데 선종했다. 회개 이후 성인의 전 생애는 알몸이신 그리스도를 따라갔던 생애로 정리된다. 성인은 1228년 7월 16일 그레고리오 9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다.

수도회 명칭 작은 형제회(Ordo Fratrum Minorum)는 프란치스코가 지향한 영성의 주춧돌이 작음(minoritas)과 형제성 (fraternitas·하느님 앞에 모두가 동등한 형제라는 특성)에 있음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작음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단어 미노리타스는 미노르(minor)라는 형용사에서 파생됐다. 이 형용사는 파르부스(parvus, 작은)의 비교급으로 더 작은을 뜻한다. 이 단어는 성인의 글에도 여러 번 언급된다. 그의 영성 안에서 보다 더 작음을 끊임없이 추구한다는 표시다. 그런 면에서 이 단어는 궁극적으로 없음과 무(無)를 지향하는 성인의 신비적인 언어 표현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성인은 자기 자신, 세상, 다른 사람들 그리고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작음을 철저하게 추구했다. 이는 하느님의 신비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신비다. 그는 작음의 신비를 놀랍도록 깊이 관상한 작음의 명수였다.

작음의 신비는 벌레 영성을 통해 가장 극적으로 나타난다. 성인은 죄악에 물든 인간의 처지를 벌레라고 규정한 뒤, 십자가의 그리스도도 수난을 겪으면서 벌레로 비참하게 돌아가셨다고 주장한다.

또 성인은 인간이든 피조물이든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관계없이 우주 안에 숨어있는 신비를 관상하는 가운데, 모든 피조물과 삼위일체적으로 일치하는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형제성을 강조했다.

사랑을 통해 삼위일체 하느님과 맺어지는 신비적 관계는 사람을 포함해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로도 확장된다. 그는 궁극적으로 하느님과 사람과 우주가 삼위일체 신비 안에서 우주적으로 하나 되는 삼위일체적이고 우주적인 형제성을 추구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