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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7 등록
[박현민 신부의 별별이야기] (68)변화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하)
즈카르야의 깊은 우울감에 대한 근본적 치유는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우울과 무기력 그리고 그 안에 본질적으로 숨어있는 불안과 같은 심리적 문제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이 가능할 수 있다는 말이다. 표면적으로 경미한 정서적 문제는 심리치료를 통해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하고 심각한 임상적 상태는 약물치료의 도움을 통해 안정을 찾을 수는 있다. 하지만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 치유와 치료의 개념과 동일시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심리정서적 문제는 재발하는 특성이 있어 당뇨와 고혈압처럼 지속적으로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앤드류 솔로몬은 「한낮의 우울」에서 우울증을 신이 내린 저주와 같은 고통으로 표현했다.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솔로몬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 찾아온 극심한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삼았다. 항우울제의 약리적 기전을 자신의 감정으로 민감하게 추적했으며, 심리치료를 통해 반추적인 부정적 사고의 핵심을 수정하는 실험을 수행했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우울증의 끊임없는 고통은 결국 솔로몬으로 하여금 우울을 실존적 차원으로 바라보도록 만들었다. "우울은 사랑이 지닌 결함이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절망할 줄 아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우울을 포함한 정신적 문제가 사랑과 깊은 상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해 준다.
그렇다. 인간의 모든 정신적이며 심리정서적 문제는 사랑과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단순한 호르몬의 불균형이나 신경전달물질의 재흡수 과정에서 드러나는 물리적 질환이 아니다. 즈카르야는 어린 시절 부모의 충분한 사랑에 대한 결핍을 무의식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즈카르야의 부모는 아이를 잘못 키웠다, 혹은 사랑을 주지 않았다 등의 평가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어떤 부모에게 양육을 받았는지와 상관없이 아이의 심리적 특성은 부모로부터 사랑의 결핍을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
물론 영유아 시절에 부모가 아닌 타인에게 키워졌거나 학대를 받은 아동이 부모 사랑에 대한 결핍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아이 스스로 사랑의 결핍을 느낄 수 있는 기질적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가 어떤 성향과 기질을 가졌는지를 확인하고 부모의 입장이 아니라 아이의 입장에서 사랑의 표현을 전해야 한다. 좀 억울한 면도 없지 않지만 어떤 부모도 자신의 양육 태도를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누구나 사랑의 결핍을 체험하고 있으며 그로 인한 내적인 문제를 어느 정도는 다 지니고 있다.
결국 즈카르야의 근원적 치료는 제2의 양육자(상담자 혹은 치료자)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의 체험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안정적으로 받음으로써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즉 모든 심리정서적 문제의 핵심적 치료요인은 사랑의 체험인 것이다. 이 말은 약물치료나 심리치료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환자나 내담자는 따뜻한 인간적 사랑을 지속해서 안정적으로 받아야만 그 치료적 도움의 예후가 긍정적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변화의 힘은 바로 사랑에서 온다. 즈카르야에게는 의사이든 상담자이든 자신의 얼어붙은 심장을 훈훈한 사랑의 온도로 녹여 줄 사람이 필요했다. 사랑의 온도가 얼어붙은 손과 발에 온기를 전해주어 움직일 수 있을 때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에서 변화가 시작될 환경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약물과 심리치료는 사실 이러한 배경이 먼저 확립되어야만 충분히 기능할 수 있는 인간적 도움인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내면의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살아있는 치료사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따뜻한 사랑의 온기를 가지게 된다면 우리를 만나는 그 누구도 그 사랑 안에 치유의 은총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사랑으로 인간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살아있는 하느님의 성전이기 때문이다.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