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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0 등록
[박현민 신부의 별별이야기](94)자신과 타인 그 관계의 딜레마 (상)
상담을 통해 도움을 얻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두 가지 유형으로 심리적인 고통과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심리적인 고통이란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하며 불안한 증상에서부터 정신적 외상(trauma)으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움 역시 가족 안에서 발생하는 상처를 포함해서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서 유발하는 고통이 존재한다.
심리적 차원이든 관계적 차원이든 우리는 다양한 유형의 십자가를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진정한 고통은 이 두 차원의 문제가 서로 통합이 되지 않을 때에 발생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대인 관계적 문제가 발생하고, 반대로 대인관계를 잘하려다 보니 자신의 심리적 고통이 발생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에게 나와 타인과의 관계는 마치 시소를 타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나를 우선으로 챙기면 타인이 피해를 보게 되고, 반대로 타인을 먼저 생각하자니 내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30대 중반의 실비아는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며 살아왔다. 당연히 대인관계는 원만하고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아왔다. 하지만 몇 달 전부터 이유 없이 소화가 안 되고 심장이 조여드는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게다가 매일 두통과 불면증으로 견디기 힘든 나날이 시작되었다. 소화기내과와 심장내과를 찾아가 진료를 보았다. 하지만 의사들은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말과 함께 정신과에 가보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만 해줄 뿐이었다. 정신과를 찾아간 실비아는 자신이 불안장애 환자이며 약물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실비아는 불안을 가라앉히는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약물을 2년째 복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신체적인 증상은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심리적인 충격을 받게 되면 오히려 더 증상이 악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결과 약물치료는 증상 완화를 위한 것이지 온전한 치료와 회복을 위한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실비아는 불안신경증을 극복하기 위한 심리치료를 받아보기로 결심했다.
처음 찾아간 간 상담실에서 실비아는 비록 마음이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문제를 정확히 지적해 주는 상담자를 만났다. 상담자는 지금까지 타인에게 맞추며 살아왔던 삶의 태도를 자신에게 맞추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지금까지는 나보다 타인을 우선시하며 살아왔지만(You-OK), 이제부터는 타인보다는 자신을 우선적으로 돌보아야 한다(I-OK)는 말이었다.
실비아는 이 말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과연 올바른 삶인지 의문이 들었다. 실비아에게 있어서 자신의 삶은 중요하지만, 이웃을 위한 삶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자신을 희생해서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비아는 타인을 위한 자신의 인생 태도를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심리적 불안과 신체적 증상을 해결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상담자는 바로 그런 삶의 태도 때문에 심리적인 불안과 신체적인 증상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고서는 치유가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자신의 종교적 믿음이 불안신경증의 원인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실비아는 심리상담을 통해 안정을 얻기보다는 오히려 더 큰 혼란과 상처를 겪게 되었다. 복음대로 살아가려는 자신의 삶을 인정해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상담자에게 분노를 느끼게 되었다. 실비아는 신앙이 없는 상담자를 떠나 자신을 신앙 안에서 치유해 줄 수 있는 상담자를 찾고 있었다. 결국, 사제를 찾아오게 된 실비아는 이전 상담으로 상처받은 자신의 영혼과 함께 불안한 마음과 신체적인 증상까지 모두 치유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표현했다. <계속>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