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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복음/말씀 > 일반기사
2021.10.2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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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자 수녀의 하느님의 자취 안에서] 14. 나무에게서 배운다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조경자(마리 가르멜, 노틀담수녀회) 수녀


가을이다. 밤 줍기도 이제 다 끝나고, 들풀도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서늘함이 산자락에 드리웠다. 가을이면 으레 잎이 떨어지는 것을 우리는 안다. 날이 추워지니 견디다 못해 떨어지려니 생각하는데, 사실 나뭇잎은 겨울을 나게 될 나무를 위해 잎에 있는 모든 에너지를 뿌리로 보내고 자신은 떨어지는 것이다. 그 큰 몸을 지탱하기 위해 꽁꽁 얼게 될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려 온 힘을 다해 흙을 붙잡는 그 일이 이루어진다. 그러니 겨우내 우리 눈에는 마른 장작처럼 보이는 어떤 나무도 땅속 깊은 데에서는 대지를 껴안는 이 큰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생각할 수 있다. 봄부터 화려하게 차려입은 그 풍성한 잎들을 내려놓는 나무의 겸손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내려놓을 때에 나무는 더욱 성장한다. 아름다운 잎을 내려놓을 때에 바닥을 딛고 키가 자란다. 떨어진 제 잎도 썩어서 자신이 디딜 흙이 되고 양분이 된다. 이 순환을 보면 땅과 나무는 결국 한몸을 이룬다.

나무에게서 이런 지혜를 배우면서도, 또 이런 이야기들을 종종 나누면서도 내려놓는다는 것이 정말 어렵게 다가온다. 젊음, 직책, 부유함, 특별함에서 평범하고 나이 듦으로 가는 것이 어려워 안간힘을 쓰게 되기 때문이다. 얼굴에 주름을 없애기 위해 보톡스를 하고, 갖가지 젊어지는 비법을 찾으며, 조금이라도 더 괜찮은 직책을 얻으려 전전긍긍하는 우리네 모습들이 숲의 자연스러운 풍경과 대비되는 이미지로 다가온다. 우리가 만들고 있는 숲은 밖으로는 화려함을 드러내 보이지만, 딛고 있는 뿌리가 얕아 언제 스러질지 몰라 보인다. 잎이 제 모든 양분을 뿌리로 내려보내고 떨어질 때에 나무는 더욱 굳건히 서게 된다는 것을, 내려놓는 것은 결코 영원히 죽음이 아님을 우리는 기억해야겠다.

나무가 제 잎을 내려놓으며 모든 양분을 뿌리로 보낼 때 나무는 마치 죽은 나무처럼 보인다. 제 몸에 있는 수분을 밖으로 내보내며 겨울의 혹한을 대비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나무에게서 배워야 할 때이다. 내 울타리 안에 쟁여놓거나 내 머리에 쌓아두게 되면, 곧 끝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함께 머리를 모으고 경계를 넘어서, 국경을 넘어서 함께 살 길을 모색하면 그나마도 희망의 빛을 좇을 수 있게 된다.

십여 년째 흙에서 살다 보니 얼굴에 기미가 가득하고, 검게 익은 피부는 해를 보지 않아도 검다. 모처럼 만에 휴가를 가니 어머니의 한숨이 끊이지를 않는다. 딸 다섯 중에 가장 막내가 주름도 많고 얼굴에 기미도 가장 많다고 걱정이 태산 같으시다. 그런 어머니께 나는 항상 "엄마, 저는요, 마더 데레사처럼 되고 싶어요"라고 말씀드렸다. 어머니께서는 "맙소사. 왜 그렇게 어렵게 살려고 그려. 그냥 평범하게 살면 안 되는 거여?"라고 되물으셨다. 나는 "엄마, 저는 정말 행복해요"라고 말씀드렸다.

우리 수녀님들은 내 얼굴을 보며, "해님이 입 맞추고 갔구나!"라고 말씀하신다. 정말 듣기에 좋은 표현이다. 내 얼굴에 태양의 흔적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내 손에 풀의 흔적이, 손톱 밑에 흙의 흔적이 있을 때도 행복해진다. 그들에게 내어주는 내 손과 발, 내 마음에 그들의 흔적이 남겨진다. 물이 드는 것이다. 자연을 돌보는 우리는 서서히 자연에 물이 들어간다. 땅과 일치되는 호흡 안에서 그들이 우리에게 내어주는 모든 것이 어머니의 젖줄처럼 다가온다. 나를 살게 하는, 우리를 살게 하는 이 내어줌의 원리를 우리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우리는 사랑 안에서 살고 있다. 모든 것 안에 하느님께서 내어주신 사랑의 자취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좀 더 살다 보면 나도 내어주는 것이 곧 사는 길임을 알게 되려나?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조경자(마리 가르멜, 노틀담수녀회)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