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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 서천교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18세의 나이에 부친 조화서 성인과 함께 한 순교의 길
지번주소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서완산동 1가 351-1 
전화번호 (063)284-3222
팩스번호 (063)282-6232
홈페이지 http://www.jeondong.or.kr
관련기관 전동 성당    
관련주소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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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의 땅: 전주 서천교 - 전주옥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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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14 조회수185 추천수0

[신앙의 땅] 전주 서천교 - 전주옥 순례


순교자들이 굳은 신앙을 증거한 순교터

 

 

- 전주 서천교.

 

 

전주교구는 초남이성지에서 치명자산성지에 이르는 22km의 순례길 ‘요안루갈다길’과 나바위성지와 여산성지, 천호성지를 잇는 24km의 ‘순교자길’, 숲정이성지에서 서천교, 초록바위, 전동성당, 전주옥을 지나 중앙성당까지 이어지는 5.6km의 ‘치명자길’ 등을 교우촌 도보순례길로 정해 순례자들을 안내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전주 ‘치명자길’ 중에서 서천교와 초록바위, 전주옥을 순례했다.

 

 

조윤호 요셉 성인의 순교터 서천교

 

아침 일찍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묵상하면서 가까이 있어 지나쳤던 도보 성지순례를 시작하였다. 싸전다리를 지나 남부시장 전주천변의 새벽시장 풍경을 보았고, 햇볕이 따가웠지만 풀잎에 맺힌 이슬은 반짝이는 크리스탈 묵주알처럼 아름다웠다. 물길을 따라 교각 밑을 걸으면서 병인박해 때인 1866년 성 조윤호 요셉의 순교를 떠올렸다.

 

- 조윤호 요셉 성인 순교 모자이크화.

 

 

아버지 조화서와 함께 체포된 그는 끝까지 신앙의 지켜 사형 판결을 받았다. 부자를 한날, 같은 장소에서, 같은 칼로 처형할 수 없어 부친이 참수형을 받아 순교한지 5일 뒤에 무수히 매질을 당했으나 죽지 않자 서천교 밑에서 빌어먹던 거지들에게 조윤호 성인의 목을 감은 끈을 서로 조르게 해서 죽였다. 거지들은 시체를 질질 끌고 다니며 비렁뱅이 짓을 하곤 했는데, 이들의 시체가 하도 참혹해서 거지가 끌고 가면 누구든지 겁에 질려 밥을 주었다고 한다.

 

새벽시장의 많은 사람이 18세 조윤호 성인 순교 당시 구경꾼들의 모습으로 스쳐 지나갔다. 나의 가슴은 너무 아팠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서천교를 지나 발걸음을 초록바위로 옮겼다.

 

- 초록바위와 남명희와 홍봉주 순교기념 모자이크화.

 

 

남명희와 홍봉주 아들의 순교터 초록바위

 

빛깔이 푸르스름한 초록바위는 없고 절벽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회색 콘크리트 옹벽이 초록바위였다. 병인박해 때인 1867년 성 남종삼 요한의 아들 남명희와 이름을 알 수 없는 홍봉주 토마스의 아들이 처형될 때, 두 사람은 나이가 너무 어려 성인(15세)이 되는 이듬해까지 처형이 연기됐다.

 

나이가 차도 차마 목을 베어 죽일 수가 없어 곤지산의 낭떠러지 초록바위 밑에서 교수형으로 처형한 뒤 전주천으로 밀어 넣어 수장했다. 잠시 머물며 초록바위 밑으로 수장된 어린 2명의 순교자를 떠올리면서 갓 피지도 못한 어린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했다.

 

서천교와 초록바위는 도로변 차량들이 많아 성지를 스쳐 지나가기가 쉽다. 자전거 도로 옆에 설치된 모자이크 벽화와 표지석만이 성지임을 알려주고 있어 더 애틋했다.

 

- 전주옥터 안내판.

 

 

천주교인들의 죽음으로 통하는 전주옥(全州獄)

 

풍남문, 전동성당의 붐비는 관광객들을 지나 한국 전통문화 전당 후문 쪽 전주옥터를 찾았다.

 

호남지역 순교자들이 반드시 거쳐 가는 전주옥. 박해 때마다 천주교 신자들로 가득 찼으며, 혹독한 문초와 형벌을 받고 신앙을 증거하며 순교했던 곳이다. 이들에게 옥은 고통스런 고난처요 동시에 기도처였다.

 

유항검의 아들 중철과 문철 형제는 이곳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이순이의 동생 이경언도 배교의 유혹을 뿌리치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전주옥에서 병사했다. 1839년에는 전라도에서 1백여 명의 천주교인 체포되어 3차례에 걸쳐 순교했다. 그 중 12명은 이곳에서 옥사했다. 김조이, 홍봉주의 아내 심조이도 옥중에서 얻은 병과 형벌로 옥사했다. 순교당시 나이가 만으로 12세를 넘지 못해 한국 천주교 순교 역사상 가장 어린 소녀인 이봉금도 이곳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안내판을 보며 순례객 없는 옥터에서 기도하고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야 하는 순교자들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전주옥은 박해 때마다 천주교 신자들로 가득 찼으며, 혹독한 문초와 형벌을 받고 신앙을 증거하며 순교했던 곳이다.

 

순교자성월엔 매번 성지순례를 했지만, 내가 주로 찾은 성지들은 잘 알려진 유명한 성지로, 관광에 가까울 정도였다. 가까이 있어 지나쳐 버렸던 성지, 알려지지 않은 성지를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무심했던 나를 보았다. 출퇴근길, 운동하는 천변길, 시장가는 길에 지나쳤던 그 길들은 성지였고, 순교를 기다리며 기도했던 순교자들의 빛나는 길이었다.

 

가족과 같이 기도하며 걸어서 갈 수 있는 성지, 그 길에 있는 표지석 하나에도 관심을 갖고 순교자들의 정신을 되새기고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을 마음속 깊이 다져 본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11월호, 이진주 마리안나(전주 Re.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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