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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 진산 성지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한국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이 신앙을 증거한 곳
지번주소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지방리 335-2 
도로주소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실학로 207
전화번호 (041)752-6249
팩스번호 (041)752-6247
홈페이지 http://jinsan.djcatholic.or.kr
관련기관 진산 성당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대전교구 진산성지: 복자 윤지충, 권상연의 신앙 어린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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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1-11 조회수133 추천수0

[함께 걷기] 대전교구 진산성지


복자 윤지충, 권상연의 신앙 어린 땅

 

 

대전교구 금산 진산성지는 한국 천주교회의 최초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 권상연 야고보의 고귀한 정신을 기억하기 위한 곳이다.

 

1791년 신해박해의 원인이 되었던 진산사건은 윤지충 바오로가 “교회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일은 하지 말라”는 어머니 권 씨의 유언대로 외종 사촌 형인 권상연 야고보과 함께 집안의 신주를 불사르고 유교식 제사를 거행하지 않으면서 비롯됐다. 조정에서는 이를 패륜 행위로 받아들여 체포령이 떨어지고 윤지충과 권상연은 피신했다. 그러자 진산 군수는 그들 대신 윤지충의 숙부를 감금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윤지충과 권상연은 피신처에서 나와 진산 관아에 자수했다.

 

진산 군수는 그들을 달래면서 천주교 신앙을 버릴 것을 권유했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천주교가 진리라며 “절대로 신앙만은 버릴 수 없다”고 대답했다. 이후 전주 감영으로 이송된 윤지충과 권상연은 문초를 당하면서도 자신들이 아는 천주교 신자들의 이름을 대지 않았다.

 

오히려 윤지충은 제사의 불합리함을 조목조목 지적했고, 혹독한 형벌을 당하면서도 자신들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천주를 큰 부모로 삼았으니, 천주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는 결코 그분을 흠숭하는 뜻이 될 수 없습니다. 만약 제가 살아서건 죽어서건 가장 높으신 아버지를 배반하게 된다면 제가 어디로 가겠습니까?”라고 증언하며 권상연과 함께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당시 전라 감사가 조정에 올린 보고서에는 “윤지충과 권상연은 유혈이 낭자하면서도 신음 한 마디 없었습니다. 그들은 천주의 가르침이 지엄하다고 하면서, 임금이나 부모의 명은 어길지언정 천주를 배반할 수는 없다고 하였으며, 칼날 아래 죽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라고 기록돼 있다.

 

보고를 받은 조정에서는 결국 처형을 명해 1791년 12월8일(음력 11월13일) 전주 남문 밖에서 참수를 당하게 됐다. 윤지충이 32세, 권상연이 40세였다. 참수된 지 9일 만에 교우들은 허락을 받고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둘 수 있었다. 교우들이 여러 장의 손수건에 순교자의 피를 적셨고, 베이징의 구베아 주교에게도 보냈다고 전해진다.

 

 

윤지충, 권상연의 유해 230년 만에 초남이 성지부근에서 발견

 

진산사건 이후 이 지역에는 천주교가 잠시 주춤하였으나 새로운 신앙 공동체가 형성됐다. 그 중 하나인 지방리공소는 본래 가새벌(병인박해 이전에 형성된 교우촌)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특히 1866년 병인대박해 때에는 김영삼, 1877년에는 동생인 김요한, 1878년에는 김춘삼이 가새벌에서 잡혀 순교했다.

 

지방리공소는 본래 가새벌에 있었으나 1927년 교우들의 노력으로 현재 위치에 성당을 건립하고 1929년 초대 주임신부를 모셨다. 그러나 1931년 성직자 부족으로 다시 공소가 됐다. 그 후 2009년 진산성지·성당으로 복원하게 됐다. 본래 전라도 땅이었던 진산은 1963년의 행정개편으로 충청남도에 편입됐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윤지충 바오로는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대표 순교자로 시복(천주교회가 공경할 만한 복된 자로 선포하는 일)됐다.

 

‘예수, 마리아’를 부르면서 칼날을 받았던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의 유해는 230년 만인 2021년 전주시 인근 초남이 성지(전북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부근에서 발견됐다.

 

전주교구는 이번 일을 교회를 넘는 일대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전주교구는 “첫 순교자의 묘와 유해의 발견은 한국천주교회 역사 사료의 부족하고 모호한 부분을 분명하게 밝혀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전주교구와 대전교구의 논의로 진토와 함께 유해 일부를 진산성지(주임신부 김용덕 야고보)로 모셔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내년 초에는 진산성지 조성 등 성역화 작업에 들어간다.

 

일 년 내내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진산성지 옆 역사박물관에는 당시의 자세한 기록이 각종 유물과 자료로 남겨져 있어 당시 순교 역사를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다. 천주교 진산성지 성당은 2017년 5월29일 등록 문화재 제618호로 지정됐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1월호, 김명이 아녜스(대전 Re.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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