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우리 성인: 한이형 라우렌시오(韓履亨, 1799~18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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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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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6-02-04 | 조회수15 | 추천수0 | |
[우리 성인] 한이형 라우렌시오(韓履亨, 1799~1846)
축일 : 9월 20일 관련 성지 및 사적지 : 종로성당, 은이성지, 광희문 성지, 우포도청 터
성인. 회장. 세례명은 라우렌시오. 일명 ‘병심’. 충청도 덕산(德山)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13세 때 입교하였고, 이후로 진실한 통회의 삶을 살면서 신심 행사에 성실히 참여하였습니다. 20세 때 교우 처녀와 혼인한 후 경기도 양지(陽智)의 은이(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은이로 182)로 이주해 살면서 빈궁한 이들에게 애덕을 베풀고,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였습니다. 그는 깊은 헌신과 덕행으로 신앙생활을 하여 앵베르(L.-J-M. Imbert, 范世亨, 1796~1839) 주교 입국 후 회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1846년 5월(음) 김대건 신부가 체포되고 병오박해가 일어나자, 포졸들이 은이 마을로 들이닥쳐 한이형과 가족 모두를 체포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은 이내 놓아 주고 한이형만을 대들보에 매달아 심한 매질을 하였으며, 주리형을 가한 뒤 서울로 압송하였습니다. 이때 포졸들이 그를 말에 태워 가려 하였으나, 이를 한사코 거절하고 맨발로 끌려갔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를 오르시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서울로 압송된 후에도 심한 매질을 당하였으며, 1846년 9월 20일(음력 8월 1일) 최후로 곤장 70도를 맞고 6명의 교우들과 함께 우포도청 옥에서 순교하였으니, 당시 그의 나이 47세였습니다.
우리 성인 한이형 라우렌시오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교회와 역사, 2026년 1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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