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내 친구 카를로 아쿠티스1: 청소년의 신앙 모델 카를로 아쿠티스 | |||
|---|---|---|---|---|
| 이전글 | 내 친구 카를로 아쿠티스2: 성체성사는 천국으로 가는 나의 고속도로 | |||
| 다음글 | 신학생 김대건의 필리핀 생활: 동양의 로마 마닐라와 치유의 영지 롤롬보이 | |||
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5-12-31 | 조회수114 | 추천수0 | |
[내 친구 카를로 아쿠티스] 청소년의 신앙 모델 카를로 아쿠티스
사람들은 누구나 삶을 살아가면서 본받을 만하거나 모범이 되는 자신만의 롤 모델(Role model)을 찾는다. 특히 한창 자신의 존재 이유 그리고 삶의 의미와 방향을 탐구하고 설정하는 청소년 시기에 롤 모델의 설정은 중요하다. 롤 모델을 통하여 자신의 꿈을 정하고, 성취동기를 높이면서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롤 모델의 삶을 통하여 우리는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인으로 롤 모델은 누가 될 수 있을까? 가깝게는 조부모님 혹은 부모님, 형제자매, 본당 공동체의 신부님 수녀님, 교리교사 그리고 신앙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친구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가도록”(히브 12,1) 도와주는 신앙의 증인들인 수많은 복자 그리고 성인(聖人)이 있다. 그들은 “어떠한 생활 신분이나 처지에서든, 하느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한 성덕에 이르도록 저마다 자기 길에서 주님께 부르심”(「교회 헌장」 11항)을 받고 그에 합당하게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선물하신 ‘성덕의 소명’, 곧 성소에 충실한 삶을 살고자 평생을 끊임없이 노력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분들의 삶을 본받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성덕의 삶’을 충실히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들의 삶을 살펴보면 그들은 우리 이웃 가운데 흔히 만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복자와 성인의 삶은 너무나도 먼 나라의 사람인 것 같다. 그들의 삶을 존경하지만 크게 와닿지 않을 때도 있다. 왜냐하면 그들 대부분은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지 않았으며 우리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0년 10월 10일, 한 소년이 복자에 올랐다. 그리고 올해 4월 성인품에 시성될 예정이다. 그는 1991년생으로 열다섯 살에 하느님 곁으로 떠난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Carlo Acutis, 1991-2006)이다. 그는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그 누구보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능동적으로 실천하며 살았다. 그가 우리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면서, 같은 신앙을 고백하고, 후드티와 청바지 그리고 운동화를 즐겨 신으며 쉽게 동네에서 마주칠 수 있는 친숙한 모습의 평범한 십대 청소년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항상 함께 있는 것
프란치스코 교황은 젊은이들에게 “여러분의 가장 친한 친구이신 예수님을 만나지 않는다면, 곧 예수님과 이루는 우정으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그 시절의 심오하고 완전한 의미를 결코 알 수 없을 것”(「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150항)이라 하시며 우리를 친구로 부르신 예수 그리스도와(요한 15,15) 깊은 우정을 나눌 것을 권고하신다. 카를로 아쿠티스의 짧은 15년의 삶을 살펴보면 그는 그 누구보다 예수님과 깊은 우정을 나눴고 언제나 하느님께로 정향된 삶을 살고자 하였다.
카를로는 15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자기 삶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충만하게 체험하였다. 그의 삶의 중심에는 언제나 하느님이 계셨다. 그가 일곱 살 때 첫영성체를 하며 적은 인생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항상 함께 있는 것’이었다. 카를로는 신앙생활에 항상 열정적이었다. 그는 첫영성체 후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자주 미사에 참석했으며, 열두 살부터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심지어 가족과 함께하는 휴가 중에도 매일 미사에 참석하였다. 그는 약속이라도 한 듯 미사 전후로 성체조배에 열심이었으며, 매주 고해성사를 보면서 하느님과 더 가까워지려 노력하였다. 특히 성체성사의 신비를 깨닫고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과 깊은 사랑에 빠졌다. 또 다섯 살 때 부모와 함께 순례한 이탈리아 폼페이의 성모 성지 방문을 계기로 성모님에 대한 깊은 신심을 간직하였다.
카를로는 이탈리아 프란치스코 성인의 성지인 아시시를 좋아했다. 그는 방학 중 가장 긴 시간을 가족과 함께 아시시에서 보내곤 하였다. 카를로는 아시시에서 행복함을 느꼈고, 그의 영혼은 언제나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아시시를 보면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슬픔은 자신을 향한 시선이고, 행복은 하느님을 향한 시선이다.” 이처럼 카를로는 하느님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삶을 기쁘고 즐겁게 살았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신앙의 모범
이러한 그의 신심은 언제나 가족과 또래 친구들에게 예수님을 알리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졌다. 그는 친구들에게 교리를 설명해 주고, 신앙과 멀어진 가족의 신앙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실제로 카를로의 어머니는 카를로 덕분에 다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또한 어릴 때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특별한 재능을 보였던 카를로는 웹 사이트를 활용하여 성모 발현지와 성체 기적에 관련된 소식을 전하였다. 늘 타인을 향해 삶이 열려 있었던 카를로는 가난한 이들에게도 먼저 손을 내밀 줄 알았다. 그는 ‘밀라노 프란치스코 수도회 빈민사목(L’Opera San Francesco di Milano)’ 활동에서 만난 가난한 이들에게도 언제나 친절하게 먼저 다가가 이웃 사랑을 실천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성당 앞에서 도움을 청하는 가난한 이들에게도 먼저 말을 걸며 인사를 나누었다. 또한 카를로는 “사람들은 몸의 아름다움에만 관심이 있고 자기 영혼의 아름다움에는 관심이 없다.”라고 하며 영성적인 삶을 살고 자신의 영혼을 가꾸는 일에 온 마음을 다하였다. 그는 스스로 자기애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며 항상 겸손해지려 노력하였다. 그가 급성 백혈병으로 생을 마감하기 며칠 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저는 제 모든 고통을 주님을 위해, 그리고 교회와 교황님을 위해 봉헌하고 싶어요. 저는 연옥을 거치고 싶지 않아요. 저는 곧바로 천국으로 가고 싶어요!” 이처럼 그는 15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신앙으로 가득 찬 삶을 살며 하느님의 선을 이 세상에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누구나 고유한 존재로 태어나지만, 많은 이들이 남들을 모방하다 삶을 마감한다!
카를로 아쿠티스는 어린 나이였지만 하느님을 향한 그의 삶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귀감이 된다. 그는 하느님께서 계획해 놓으신 “자기 길을 식별하고, 하느님께서 개인에게 안배해 주신 개인적 은사인 자신의 최고 장점을 발휘”(「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1항)하며 살았다. 그는 “자신에게 해당되지 않는 어떤 것을 모방하려고 애쓰는 것”(「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1항)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께서 선물하신 그의 삶에 충실하며, 모든 순간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삶을 충실하게 살고자 하였다. 즉, 카를로는 자신의 삶을 통해 “빠르게 변하는 떠들썩하고 공격적인 세상에서 인내하며 지속적으로 선을 행함으로써 성덕의 증거”(「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12항)를 보여 준 것이다.
카를로는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평범한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하였다. 어머니 안토니아는 카를로를 낳기 전까지 평생 세 번 성당에 갔을(세례받을 때, 견진받을 때, 결혼할 때) 정도로 신앙생활에 열심이진 않았다. 카를로는 여느 또래처럼 학교가기를 좋아했고, 늘 친구들과 축구하며 신나게 노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리고 호기심이 많아 새롭게 배우는 것을 언제나 흥미로워했다. 또 집에 오면 플레이 스테이션(게임기)을 즐기기도 했고, 장난기가 많은 여느 남자 꼬마 아이들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 어머니 안토니아가 기억하는 카를로는 언제나 밝고 긍정적이었으며 주변 사람에게 친절하고 온화한 아들이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항상 미소로 가득하여 함께 있는 사람마저 미소 짓도록 하였다. 여느 도래 꼬마들과 다름없었던 카를로가 단 한 가지 차이점이 있었다면 바로 신앙에 대한 열정이었다. 카를로는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신앙 안에서 자기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았다. 그리고 다양한 경험과 만남을 통하여 ‘나는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또 그는 하느님이 좋다고 하여 신앙생활에만 충실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역할에 최선을 다하였다. 왜냐하면 카를로는 자신의 삶은 하느님께서 선물해 주셨으므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기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손을 먼저 내미는 일에 거침이 없었으며 그의 삶은 언제나 타인을 향하여 열려 있었다. 카를로는 하루하루 하느님께서 그를 위하여 계획해 놓으신 삶에 가까워지는 삶을 산 것이다.
오늘날 청소년을 중심으로 탈종교화 현상이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청소년의 삶에서 신앙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으로 변하였다. 신앙은 청소년에게 성적, 좋은 대학, 직업, 돈처럼 일차적으로 필요한 것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막연하게 추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카를로 아쿠티스의 삶이 증명해 주듯이 신앙은 삶을 훨씬 더 자유롭고 풍요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신앙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판단 기준이 되어 바른길로 가도록 인도해 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청소년에게 “무기력하게 근근이 살아가거나 마치 구경꾼처럼 세상을 바라보지 마십시오.”(「그리스도는 살아계십니다」. 143항)라고 권고한다. 즉, 청소년이 지닌 고유한 본성인 젊음을 최대한 활용하여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라는 것이다. 카를로 아쿠티스는 그 누구보다 자신의 삶에 진지하였으며,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앞을 향하여 힘차게 걸어 나갔다. 이러한 삶이 가능했던 이유는 카를로가 자신의 신앙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앙에 확신을 두기 위하여 카를로는 항상 하느님과 가장 가까이 머물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부디 오늘을 살고 있는 청소년이 같은 시대를 살았던 카를로 아쿠티스로부터 희망을 얻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들도 카를로 아쿠티스처럼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충분히 성덕의 삶을 지향하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번 호부터 이진옥 페트라 박사의 ‘내 친구 카를로 아쿠티스’를 연재합니다. 이진옥 박사는 로마 교황청립 살레시오대학교 신학 박사(청소년 사목과 교리교육 전공)이며 현재 돈보스코청소년영성사목연구소 선임 연구원이자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 위원입니다.
[살레시오 가족, 2025년 3월호(191호), 이진옥 박사(돈보스코청소년영성사목연구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