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 살던 어느 상인의 아들인 성 세르기우스(또는 세르지오)는 이탈리아 시칠리아(Sicilia)의 팔레르모(Palermo)에서 태어났고, 로마에서 교육을 받은 후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687년 12월 15일에 교황 코논(Conon)을 계승하여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의 교황 선출에는 잡음이 많았고, 또 그는 동로마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2세가 교황의 동의도 없이 692년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궁전의 커다란 원형 거실(trullus)에서 개최하여 트룰라눔(Trullanum) 공의회로도 회의의 칙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함으로써 황제와 위험스런 논쟁에 말려들었다. 만일 성 세르기우스 교황이 이 칙서를 인정하게 되면 콘스탄티노플이 로마와 대등한 교회 구조상의 위치를 갖게 되는 것이었다. 황제는 친위대 장군인 자카리아스(Zacharias)를 로마로 파견하여 교황을 체포해 오도록 하였으나, 로마 시민들이 단결하여 이를 저지하고 자카리아스를 축출하였다. 이 사건은 황제가 죽는 날까지 계속되었다.
689년 성 세르기우스는 성토요일에 로마로 성지순례를 온 웨식스(Wessex)의 왕인 성 카이드발라(Caedwalla, 4월 20일)에게 세례를 주었고, 695년에는 성 빌리브로르두스(Willibrordus, 11월 7일)를 프리지아(Frisia)의 대주교로 서임하여 영국 선교와 독일 그리고 프리슬란트(Friesland)에서의 선교활동을 격려하였다.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성 세르기우스 교황은 직접 로마에 있던 음악학교(스콜라 칸토룸)를 다니면서 전례 음악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미사 중에 '하느님의 어린 양'(아뉴스 데이, Agnus Dei) 노래를 도입했다. 또 십자가 현양 축일을 처음 도입한 교황으로도 알려진 그는 성 베드로 대성전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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