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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한국 최대의 성인과 복자 탄생지
지번주소 서울시 중구 의주로 2가 16-4(서소문 역사공원 내) 
도로주소 서울시 중구 칠패로 5
전화번호 (02)3147-2401 , (02)3147-2402
팩스번호 (02)3147-2406
홈페이지 http://www.yakhyeon.or.kr
관련기관 중림동약현 성당    (02)362-1891
관련주소 서울시 중구 청파로 447-1(중림동)
문화정보 사적 제252호(중림동약현 성당)
서소문 성지, 순교자 현양탑
 
서소문 순교성지
 
서소문(西小門) 즉 소의문(昭義門)은 아현과 남대문 밖의 칠패(七牌) 시장으로 통하던 문으로 일찍부터 사람들이 붐비던 곳이었다. 조선시대의 사형집행은 많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어 범죄를 예방하려는 목적에서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에서 행해졌으며, '서소문밖'도 이러한 이유에서 1416년(태종 16년)에 서울의 주요한 형장으로 지정되었다. 이곳 형장의 위치는 서소문 밖의 비탈진 언덕 길 아래, 즉 현재의 서소문 공원 옆에 있던 이교(흙다리)의 남쪽 백사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784년 겨울,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이후 100여 년 동안 박해가 계속되면서 천주교회는 전국적으로 1만 명 내외의 순교자를 탄생시켜야만 했다. 특히 이곳 서소문 밖 형장에서는 1801년 무렵까지 수많은 신자들이 처형되었으며, 그 중에서 44명의 순교자는 1984년 5월 6일 한국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맞이하여 선포된 103위 성인(聖人) 가운데 포함되었다. 이로써 서소문 밖은 성인 44명이 순교의 영광을 얻은 거룩한 믿음의 터전이요, 또 다른 성인이 나게 될 약속의 터전이 되었다.
 
한국천주교회에서는 이 성인 탄생을 기리기 위해 1984년 이곳 서소문 공원 안에 순교자 현양탑을 건립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1997년 공원이 새로 단장되면서 기존의 현양탑이 헐리게 되었고, 이에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는 오늘 이 자리에 새 순교자 현양탑을 세우게 된 것이다.
 
이 현양탑을 세우는 목적은 천주교회 44명의 성인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진리를 증거하다가 희생된 수많은 유명, 무명의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고자 하는 데 있다. 아울러 그들의 위대한 정신과 믿음을 후손에게 전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성인과 순교자들을 본받아 하느님 말씀의 증인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뜻으로 1999년 성령강림절에 이 탑을 이곳에 세운다.
 
순교자 현양탑의 상징적 의미
 
조선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형틀로써 '칼'을 형상화한 화강석 3개의 탑은 죽음과 박해를 상징한다. 주탑과 좌우탑 윗부분의 원형 형틀에서 흘러내리는 7개의 금빛 선은 순교를 통한 하느님의 은혜(7성사)를 상징화하였다.
 
현양탑의 전체 주제는 주님의 행복선언 가운데 "복되어라, 의로움에 목마르고 굶주린 이들!(마태 5장 6절)"로 하였다. 중앙 하단의 청동조각은 참혹한 순교의 형장을 형상화하였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순교자의 모습은 예수(교회)를 품에 안은 성모와 같이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순교자를 오늘의 우리가 품에 받아 들여야 함을 의미한다.
 
주탑을 중심으로 해서 오른쪽 탑은 44위 성인, 성녀들의 명단을, 왼쪽 탑은 54위 순교자 명단을 기록하여, 이곳의 역사를 현장화하였다.
 
물속에 잠긴 수 천 개의 조약돌은 이곳에서 순교한 수많은 익명의 순교자를 상징한다. 물속에 비친 탑을 통하여 죽음을 극복하고 부활한 생명의 이미지를 극대화하였다.
 
원형 분수대를 통하여 솟아오르는 물이 투명한 판 유리벽을 타고 부서져 내리고, 그것에 물소리의 효과를 주어 묵시록적 생명의 환희와 신비를 더욱 고조시키도록 하였다. 그리고 야간에는 수면 아래의 조명기구가 탑과 유리벽을 환히 비춤으로써 그 효과를 더하도록 하였다.
 
탑의 뒷면은 라자로의 부활 장면을 부조로 설치하여 우리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되리라는 것을 암시하였다.
 
작가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이 탑의 제작을 1997년 4월에 조광호 신부(화가, 가톨릭 조형예술 연구소 대표)에게 맡겼다. 그 후 조광호 신부를 중심으로 가톨릭 조형예술 연구소에서 건축가 임근배, 설치작가 전종철과 함께 30여 차례 토의를 거치며 3년 동안의 작업으로 1999년 5월에 마침내 완성되었다. [출처 : 순교자현양편집부, 순교자 현양, 제59호, 2001년 1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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