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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 백곡 성당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아담한 성당 마당에 모셔진 두 순교자의 묘
지번주소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석현리 273 
도로주소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백곡로 892
전화번호 (043)532-5021
홈페이지
백곡 공소의 순교자 무덤
 
백곡 공소 앞에는 지금 2기의 순교자 무덤이 나란히 안장되어 있다. 왼쪽이 올케인 ‘밀양 박씨’(박 바르바라)의 무덤이고, 오른편에 있는 것이 시누이 ‘남원 윤씨’(윤 바르바라)의 무덤이다. 이 둘의 무덤은 본래 배티 뒷산 성재의 무명 순교자 묘역(현 6인 묘역) 안에 위아래로 나뉘어 안치되어 있었는데, 오랫동안 잃어버린 것을 1970년대 초에 후손들이 다시 찾았다.
 
순교자들의 무덤을 다시 찾은 경위와 공소 경내에 안장한 과정은 이러하다.
 
남원 윤씨 집안은 본래 홍주에서 살다가 21세 손인 윤행윤 때에 박해를 피해 배티 골짜기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병인박해를 당해 행윤의 손자 며느리인 밀양 박씨 바르바라(1827년생, 23세 손 윤태명 요셉의 부인)와 손녀 윤씨 바르바라가 함께 체포되어 신앙을 굳게 증거한 뒤 매를 맞아 순교하였으며, 그 시신은 가족들에게 거두어져 배티 성재에 안장되었다. 집안에서 내려오는 이들의 순교일은 1866년 10월 20일이다.
 
행윤의 아들이자 순교자 윤 바르바라의 부친 윤기현(바오로, 1794년생)과 부인 강릉 김씨(루치아, 1801년생)는 다행히 병인년의 박해를 피할 수 있었으나, 이듬해에는 모두 포졸들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이때 먼저 부인인 루치아가 1867년 8월 12일 순교하였고, 11월 15일에는 남편 바오로도 순교하였다. 현재 루치아의 무덤은 배티 고개에 있는 무명 순교자 14인 묘역 중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순교자 바오로의 무덤은 목천 성거산 아래(천안시 직산 석점)에 모셔져 있다.
 
이후 박해를 피해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녀야만 했던 순교자의 후손들은 오랫동안 조상들의 묘를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순교자 윤기현(바오로)의 아들인 윤태명(요셉)의 외손주 사위인 원두현 씨가 박해 후 배티에 거주하게 되었고, 순교자 윤기현의 고손 윤재웅(베드로) 일가는 아산 도고 유동에서 살다가 청양의 깊은 산골로 이주하였다. 윤재웅의 집안에서는 청양으로 이주하기 직전, 무덤이 분명한 배티 순교자 박 바르바라와 윤 바르바라의 벌초를 배티의 원두현 씨에게 부탁하였다. 박 바르바라는 원두현 씨의 처 할머니가 되고, 윤 바르바라는 처 고모 할머니가 된다.
 
순교자의 무덤을 돌보던 원두현 씨는 그 후 평택 신대리로 이주하면서 배티의 박 회장에게 벌초를 부탁하였고, 그는 행방 전까지 순교자의 무덤을 돌보다가 아들에게 이 일을 맡겼다. 그러나 이후에도 오랫동안 순교자 윤씨의 후손들이 배티를 찾아가지 않으면서 순교자 무덤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러던 중 25세 손 윤예섭이 목천에서 평택으로 이주하면서 우연히 고종 매형인 원두현 씨와 이웃해 살게 되었으며, 사돈(박 회장의 손자와 윤예섭의 자녀가 혼인함)인 박 회장의 아들 박진규 씨에게 문의하여 배티 순교자 할머니들의 무덤을 찾고, 장송인 요한이 논 100평을 사서 무덤 관리를 부탁하였다.
 
1977년 평택에 사는 순교자의 후손들은 그 무덤들을 선산으로 이장하기 위해 배티를 찾았다. 이를 알게 된 배티와 백곡 공소의 신자들은 후손들을 만나 “선산에 모셔 간다 해도 후손들이 잘 모신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이곳에 모셔 두면 우리 교회에서 대대로 잘 돌보며 기도드릴 수 있을 것이니, 이곳에 그냥 모셔 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고 하여 이장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순교자들의 유해를 백곡 공소 경내로 이장한 뒤 깨끗하게 단장하였다. [출처 : 류한영 / 차기진 공저, 교우촌 배티와 최양업 신부, 양업 교회사연구소, 169-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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