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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아(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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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다리아 (Daria)
축일 10월 25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283년경
같은이름
성인 기본정보

   성 크리산토(Chrysanthus)와 성녀 다리아는 초기 교회의 순교자임은 분명하나 그들의 생애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6세기 또는 7세기의 한 기록에 따르면, 성 크리산토는 알렉산드리아의 한 귀족의 외아들로 부모가 로마로 이주한 후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러나 로마의 사치와 방탕함에 환멸을 느낀 그는 성경을 읽고 교리를 배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에 입문했다. 아들의 개종이 못마땅했던 아버지는 그를 그리스도인들과 떼어놓기 위해 미네르바(Minerva) 신전의 여사제인 성녀 다리아를 동원해 감언이설로 달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히려 성 크리산토가 성녀 다리아를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킨 후 서로 동정을 지키기로 약속하고 결혼을 했다. 그들 부부는 열정적으로 선교하여 많은 로마인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는데, 그중에는 군인들이 특히 많았다.

   당시 호민관이었던 성 클라우디오(Claudius)는 성 크리산토를 체포해 배교를 강요하며 고문을 가했다. 하지만 고문을 받는 동안 성 크리산토가 보여준 강인한 믿음에 감동해 그와 그의 아내인 성녀 힐라리아(Hilaria)와 아들인 성 야손(Jason)과 성 마우로(Maurus, 모두 12월 3일) 그리고 70명의 군인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가 순교하였다. 전설적 이야기에 따르면 미네르바 신전의 여사제였던 성녀 다리아는 매음굴로 보내졌으나 암사자의 도움으로 순결을 지켰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신전 여사제에 대한 로마의 관습상 이는 현실성 없는 이야기로 여겨진다. 오히려 황제의 명령으로 참수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투르(Tours)의 주교이자 역사가인 성 그레고리오(Gregorius, 11월 17일)는 성 크리산토와 성녀 다리아의 극적인 최후를 전해 주었는데, 그들은 눈부신 활동의 결과로 체포되어 누메리아누스 황제(283~284년 재위)의 명령으로 로마의 트라소네(Trasone) 카타콤바가 있는 살라리아 노바 가도(via Salaria Nova)의 모래 구덩이에 산 채로 묻혔다고 한다.

   성 크리산토와 성녀 다리아가 순교한 후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무덤에 모여 기도하자 황제는 그 입구를 봉쇄하고 그들에 대한 공경을 금지했다고 전해온다. 투르의 성 그레고리오는 교황 성 다마소 1세(Damasus I, 12월 11일)가 그들의 무덤을 장식하고 비문을 지었다고 전하는데, 아직 비문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그들의 무덤은 고트족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539년에 복원되었고, 844년 그들의 유해가 독일 서부 프륌(Prum)으로 옮겨졌다가 바트뮌스터라이펠(Bad Munstereifel)의 성 크리산토와 성녀 다리아 성당에 안치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그 외에도 최근에는 이탈리아 레지오 에밀리아(Reggio Emilia)의 성모 승천 주교좌성당에도 그들의 유해 일부가 모셔져 있음이 알려졌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10월 25일 목록에서 성 크리산토와 성녀 다리아에 대해 전해주었는데, 개정 “로마 순교록”은 그들의 순교 시기를 253년경으로 보았다. 교회 미술에서 그들의 초상은 이미 6세기경 라벤나(Ravenna)의 산 비탈레 대성당(Basilica di San Vitale)의 모자이크 작품에도 등장하였다.♣

참고자료

  •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 저, 변우찬 역, 황금 전설 : 성인들의 이야기 - '성 크리산토와 성 다리아', 서울(일파소), 2023년, 898-900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2권 - '그리산도와 다리아',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5년, 972쪽.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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