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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킬리아누스(Kilianus, 또는 킬리아노)는 7세기에 아일랜드 북동부 캐번주(County Cavan)의 뮬러(Mullagh)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수도원에서 자랐다. 그는 처음에 자기 구원을 위한 고독한 삶을 추구했으나 점점 하느님의 부르심을 느끼며 이교도들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을 깨달아 선교사 훈련을 받은 뒤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예수님의 12사도를 본받아 동료 사제인 성 콜로만노(Colomannus)와 성 토트나노(Totnanus) 부제를 포함한 11명의 동료와 함께 이교도가 지배적이었던 게르마니아의 동프랑코니아(Franconia) 지방으로 갔다. 그들은 배를 타고 라인강(Rhein R.)과 마인강(Main R.)을 거슬러 올라가 뷔르츠부르크에 정착하기로 했다. 성 킬리아노는 본격적인 선교 활동을 시작하기에 앞서 11명의 동료와 함께 686년경 로마(Roma)로 가서 교황 코논(Conon, 686~687년 재위)에게 선교 허락을 받았다. 교황은 성 킬리아노를 주교로 축성하고 바덴(Baden)과 바이에른(Bayern) 지역에 해당하는 동프랑코니아와 튀링겐(Thuringen) 동부 지역 복음화에 대한 책임을 맡기며 파견하였다. 프랑코니아로 돌아온 성 킬리아노는 먼저 독일어를 배워 열정적으로 설교하여 주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프랑코니아의 고스베르트(Gosbert) 공작도 새로운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 결국은 온 가족과 궁정의 많은 귀족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성 킬리아노는 능력 있고 열성적인 협조자인 성 콜로만노 신부와 성 토트나노 부제와 함께 선교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그들은 처음에 아일랜드에서 발달한 농업 · 임업 · 축산업에 대한 실용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낙후된 중앙 유럽의 농업과 문명화에 이바지하였다. 그런데 고스베르트 공작이 고대 관습에 따라 형의 미망인인 게일라나(Gailana)와 결혼했는데, 당시 교회법으로 이는 근친상간으로 간주되며 불법이었다. 성 킬리아노는 두려움 없이 공작에게 이 사실을 여러 차례 알렸고, 결국 공작은 게일라나와 이혼하기로 했다. 이 소식을 들은 게일라나는 689년경 공작이 전쟁에 나간 사이에 병사들을 보내 성 킬리아노와 성 콜로만노와 성 토트나노를 살해하였다. 공작이 원정에서 돌아와서 성 킬리아노 일행을 찾자 게일라나는 그들이 나라를 떠나 행방을 알 수 없다고 둘러댔다. 그 후에 성 킬리아노 일행을 살해한 이들은 광기에 휩싸여 죽었다고 한다. ‘프랑코니아의 사도’로 불리는 성 킬리아노와 동료 순교자들의 유해를 742년경 성 보니파시오(Bonifatius, 6월 5일)에 의해 뷔르츠부르크의 초대 주교로 임명된 성 부르카르도(Burchardus, 2월 2일)가 마구간 아래에서 발굴하면서부터 그들에 대한 공경이 시작되었다. 752년에 교황 성 자카리아(Zacharias, 3월 15일)는 그들에 대한 공경을 허락했고, 순교자들의 유해는 그해 7월 8일에 성 부르카르도가 건립한 뷔르츠부르크 대성당에 안치되었다. 그 뒤로 이날을 성 킬리아노와 동료 순교자들의 축일로 기념하게 되었고, 성 콜로만노와 성 토트나노는 성 킬리아노와 함께 뷔르츠부르크 교구의 공동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8일 목록에서 독일의 뷔르츠부르크에서 교황의 위임을 받아 복음을 전파한 성 킬리아노 주교가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킨 후 동료 사제인 콜로만노와 토트나노 부제와 함께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성 킬리아노의 생애에 관한 역사적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대부분 전설적 이야기만 전해지는 가운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오늘날 독일에 해당하는 아우스트라시아(Austrasia)의 뷔르츠부르크에서 본래 아일랜드 출신으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그곳에 와서 그리스도교적 관습을 소중히 보존했던 성 킬리아노 주교가 순교로써 자신의 순교자적 삶을 완성했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동료 순교자인 성 콜로만노와 성 토트나노에 대해서 더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성 킬리아노는 성 킬리안(Kilian)으로도 불리고, 성 콜로만노는 성 콜만(Colman) 또는 성 콜로나트(Kolonat)로, 성 토트나노는 성 토트난(Totnan)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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