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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릭비(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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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요한 릭비 (John Rigby)
축일 6월 2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평신도, 순교자
활동지역 영국(UK)
활동연도 1570?-1600년
같은이름 리그비,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성인 기본정보

   성 요한네스 릭비(Joannes Rigby, 또는 요한 릭비)는 1570년경 영국 잉글랜드 북서부 랭커셔(Lancashire)에서 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성장하면서 집안에서 일어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의 갈등 때문에 많은 고민과 고통을 당했다. 그러던 중 런던(London)의 템스강 남쪽 서더크(Southwark)의 클링 감옥(The Clink)에 갇혀 있던 작은 형제회의 성 요한 존스(Joannes Jones, 7월 12일) 신부를 만나게 되었다. 성 요한 릭비는 성 요한 존스 신부에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가톨릭 신앙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도 걷잡을 수 없는 생활에 빠져들었다. 여러 명의 배교자를 회개시키는 활동을 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자기 부친도 들어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국교회의 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여왕의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는 가톨릭을 믿고 있음이 드러나자 자신이 가톨릭 신자임을 밝히고 런던의 뉴게이트(Newgate) 감옥에 갇혔다. 그는 두 번이나 자기 뜻을 철회할 기회를 얻었지만, 그때마다 단호히 거절했다. 판사가 반역죄로 유죄를 선고하자 그는 자신이 원하던 바라고 당당히 말했다. 1600년 6월 21일, 자신이 처형되는 날에는 이런 글을 남겼다. “내가 태어난 이래 이처럼 기쁜 일은 없었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는 서더크의 네킹어(Neckinger) 강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부근(St. Thomas Waterings)에서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사형 집행자에게 “내 죽음에 가담한 당신과 다른 모든 사람을 진심으로 용서한다.”라며 그 징표로 간직하라고 작은 금 조각 하나를 주었다.

   성 요한 릭비는 1929년 12월 1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 중 한 명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그의 축일은 개인적으로는 순교한 날인 6월 21일에 기념하고, 시성 후에는 40위 순교자의 일원으로서 시성일인 10월 25일에 기념해 왔었다.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이후 40위 순교자들의 축일은 5월 4일로 옮겨져 종교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과 함께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전례 안에서 기념하고 있다. 이날은 종교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6월 21일 목록에서 성 요한 릭비가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치하에서 가톨릭교회와 화해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영국 런던의 서더크에서 잔인한 고문과 교수형으로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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