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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폴리토(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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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히폴리토 (Hippolytus)
축일 8월 13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교부, 사제, 순교자
활동지역 로마(Roma)
활동연도 +236년경
같은이름 히뽈리또, 히뽈리뚜스, 히폴리또, 히폴리뚜스, 히폴리투스
성인 기본정보

   학덕이 뛰어난 로마의 사제였던 성 히폴리투스(또는 히폴리토)는 170년경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동방의 소아시아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를 동방 출신으로 보는 것은 그가 지닌 그리스 철학과 신화, 그리스 신비 예식들에 대한 다양하고 방대한 지식과 작품에 나타난 종교적 심성으로 보아 헬레니즘적 교육을 받고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는 리옹(Lyon)의 주교인 성 이레네오(Irenaeus, 6월 28일)의 제자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동시대 인물인 오리게네스(Origenes)에 필적할 만큼 방대한 저서를 남긴 3세기 로마 교회의 대표적 신학자이자 저술가로, 212년경 로마를 방문한 오리게네스는 로마 교회의 이름난 사제였던 그의 강론을 들었다고 전해주었다. 그는 교황 성 빅토르 1세(Victor I, +200년경, 7월 28일)의 재위 기간에 로마에 와서 사제품을 받고 활발히 활동하였다.

   성 히폴리토는 성 빅토르 1세의 후임자인 교황 성 제피리노(Zephyrinus, 12월 20일)를 공공연하게 비난하였다. 그 이유는 당시 로마에서 퍼지기 시작한 그리스도론적 이단, 특히 모달리즘(Modalism, 삼위일체 하느님은 한 분이신 하느님의 세 형태에 불과하다는 양태설[樣態說])과 사벨리우스주의(Sabellianism, 사벨리우스의 이단적인 삼위일체설)에 대한 교황의 관대한 태도 때문이었다. 게다가 217/8년에 교황 성 제피리노가 선종한 뒤에 후임 교황 선출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자신이 아닌 노예 출신의 부제로 로마 성밖에서 지하 공동 묘지를 관리하던 성 갈리스토 1세(Callistus I, 10월 14일)가 선출되자 성 히폴리토는 그의 신학과 사목 방향에 대해 비판을 이어갔다. 특히 성 갈리스토 1세 교황이 중죄를 범한 신자들의 참회 조건을 완화하고 교회 공동체에 받아들이자 엄격주의자였던 성 히폴리토는 교황이 초대교회의 전통에서 이탈하고 있다며 강력히 비난하였다. 결국 그는 교황과 결별하고 추종자들과 함께 새 교회를 세우고 로마의 주교로 선출되어 교회 역사상 최초의 ‘대립교황’(Antipapa)이 되었다.

   로마 교회의 분열은 성 갈리스토 1세의 후임자인 교황 성 우르바노 1세(Urbanus I, 5월 19일)와 교황 성 폰시아노(Pontianus, 230~235년 재위, 8월 13일) 때까지 계속되었다. 성 폰시아노가 교황으로 재위하던 시기는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황제(222~235년 재위)의 온건 정책으로 교회가 박해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리던 시기였다. 하지만 교회의 분열이 계속되던 235년 3월 막시미누스 트락스 황제(235~238년 재위)가 즉위하면서 전임 황제의 온건 정책을 철회하고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에 대한 박해를 시작하였다. 결국 교황 성 폰시아노와 대립교황인 성 히폴리토가 박해의 첫 희생자로 체포되어 ‘죽음의 섬’으로 불릴 만큼 악명 높은 사르데냐섬(Sardegna Is.)의 광산으로 유배 가게 되었다. 보통 유배는 종신형이었기에 성 폰시아노 교황은 가능한 후임자가 빨리 선출될 수 있도록 235년 9월 28일 스스로 교황직을 사퇴하였다. 성 히폴리토 역시 자신의 대립교황 직책을 포기하고 로마 감옥이나 유배지에서 성 폰시아노 교황을 만나 교회와 화해하였다. 그는 자신의 주교직에 관한 주장을 철회하고 추종자들에게 교회의 일치를 촉구하는 권고문을 보냈다고 한다.

   성 히폴리토는 사르데냐 광산의 비참한 환경에서 가혹한 대우를 받으며 고통을 받다가 얼마 후에 사망하였다. 성 히폴리토와 성 폰시아노는 박해 중에 유배지의 혹독한 환경에서 온갖 고초를 겪고 숨을 거뒀기에 일찍이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아왔다. 성 히폴리토의 유해는 교황 성 폰시아노의 유해와 함께 교황 성 파비아노(Fabianus, 236~250년 재위, 1월 20일)에 의해 로마로 옮겨져 236년 또는 237년 8월 13일 티부르티나 가도(Via Tiburtina)의 묘지에 묻혔고, 성 폰시아노는 칼리스투스 카타콤바에 새로 마련된 교황 묘실에 안치되었다. 교회와 화해함으로써 유일하게 성인으로 공경받는 대립교황인 성 히폴리토는 성 폰시아노 교황과 함께 유해가 이장된 8월 13일에 축일을 기념하였다. 354년의 “리베리오 교황표”(Catalogus Liberianus)에 이미 그들의 축일이 언급되었는데, 8세기에 교황 성 폰시아노만 11월 19일로 옮겨 축일을 기념하다가 1969년 전례력 개정 이후 다시 8월 13일에 함께 기념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그의 축일을 1월 30일에 기념하고 있다.

   성 히폴리토는 많은 작품을 저술했으나 오리게네스의 경우처럼 대부분 유실되었다. 그의 대표작이자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철학 총론”(Philosophumena)으로 제1권이 “철학 총론” 또는 “모든 이단에 대한 논박”(Refutatio Omnium Haeresium)으로 시작해 이를 제목처럼 부르기도 한다. 총 10권으로 된 이 작품은 모든 이단과 열교 사상을 논박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삼고 있다. 그 외에도 “다니엘서 주석”과 “아가서 주석” 등도 저술하였고, 아담부터 234년까지의 세계사를 다룬 “연대기”와 수많은 강론과 전례에 관한 작품 그리고 “사도 전승”(Traditio Apostolica) 등을 저술하였다. 215년경에 집필된 “사도 전승”의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번역본만 남아 있는데, “디다케”(Didache)와 함께 전례와 교회 규범에 관한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역사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 작품에서 그는 교계 제도와 그에 따른 서품 절차, 성찬례와 감사기도, 예비신자의 등록에서 세례까지의 입교 과정 등 교회의 전례와 신자 생활의 규범 등에 대해 다룸으로써 교회의 전례와 예식서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성 히폴리토의 이름은 초기 교회의 다양한 성인전과 순교자 기록에 나타나는데, 교회가 라틴어를 사용하면서 그리스어로 작성된 성 히폴리토의 많은 글이 잊혔듯이 그의 삶에 대해서도 잊히거나 불확실한 전설들이 많이 생겨났다. 4세기에 교황 성 다마소 1세(Damasus I, 12월 11일)는 비문을 통해 성 히폴리토가 노바시아누스(Novatianus)의 제자였지만 나중에 추종자들과 함께 로마 교회와 화해하고 일치를 이룬 후 순교했다고 적었다. 5세기에 로마의 역사가이자 시인이었던 프루덴티우스(Prudentius)는 “성 히폴리토의 수난기”에서 그가 야생마에 끌려다니다가 순교했다고 했는데, 이는 아테네의 신화 속 인물인 히폴리투스 이야기와 비슷하다. 이런 전설로 인해 그는 말(馬)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졌다. 7/8세기에 와서는 그가 로마의 부제인 성 라우렌시오(Laurentius, 8월 10일)를 감시하던 간수이자 로마군의 장교로 부하들과 함께 개종한 후 야생마에 묶여 순교했다고 묘사되었다. 이 전설은 로마의 성무일도에도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이를 반영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을 타원형으로 둘러싼 열주 위에 세워진 140명의 성인 입상 중 하나인 성 히폴리토 상은 군복을 입은 젊은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포르토(Porto)의 주교이자 순교자인 성 히폴리토(8월 22일)와 오랫동안 혼동되었으나 1969년 전례력 개정 이후 그의 이름은 로마 순교록에서 삭제되었다.

   성 히폴리토 사제 순교자에 관한 다양한 전설로 인해 옛 “로마 순교록”은 8월 13일 목록에서 로마에서 복된 히폴리토가 발레리아누스 황제(253~260년 재위) 치하에서 영광스럽게 신앙을 고백하고 순교했다고 하며, 그가 온갖 고문을 견뎌낸 후 사나운 말에 묶여 가시덤불 속을 끌려다니며 온몸이 찢기는 고통을 당하다가 숨을 거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같은 날 그의 유모였던 복녀 콘코르디아(Concordia)도 채찍으로 매를 맞고 순교했고, 19명의 다른 가족들도 티부르티나 문(Porta Tiburtina)밖에서 참수당해 베라노 들판(Campo Verano)에 묻혔다고 전해주었다. 반면에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8월 13일 목록에서 그에 대한 전설에 기초한 이야기를 모두 삭제하였다. 즉, 교황 성 폰시아노와 사제 성 히폴리토가 함께 사르데냐로 유배되어 형을 복역하고 하나의 왕관을 쓰고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며, 그들의 유해가 로마로 옮겨져 안장되었는데 성 폰시아노는 칼리스투스 묘지에 그리고 성 히폴리토는 티부르티나 가도의 묘지에 묻혔다고 하며 그들의 순교 시기 또한 236년경이라고 기록하였다.♣

참고자료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폰시아노 교황과 성 히폴리토 사제 순교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436-437쪽.
  • 성 히폴리토 저, 이형우 역주, 히뽈리뚜스 - 사도 전승(교부문헌총서6), 왜관(분도출판사), 1992년.
  • 존 노먼 데이비슨 켈리 / 마이클 월시 저, 변우찬 역, 옥스퍼드 교황 사전 - 히폴리투스, 왜관읍(분도출판사), 2014년, 52-53쪽.
  • 지그마르 되프 · 빌헬름 게어링스 편, 한국교부학연구회 하성수 · 노성기 · 최원호 역, 교부학 사전 – 히폴리투스, 강원도 횡성군(한국성토마스연구소), 2022년, 1183-1188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2권 - '히폴리토',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6년, 9920-9924쪽.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히폴리토 사제 순교자', 서울(성바오로), 2002년, 204-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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