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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알렉산데르는 로마 출신으로 3세기 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년 재위)와 공동 황제였던 막시미아누스 황제(286~305년 재위) 시대에 호민관 티베리우스(Tiberius) 휘하의 군단병이었다. 막시미아누스 황제는 당시 로마에 건립된 유피테르(Iuppiter) 신전 봉헌식에서 모든 로마 시민은 그 신상 앞에서 향을 피우고 제물을 바쳐야 한다는 칙령을 내렸다.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성 알렉산데르는 이를 거부하고 공개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해 체포되었다. 유명한 군인이었던 그는 황제 앞으로 끌려가 신전에 제물을 바치도록 강요당했지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끝까지 거부하였다. 그래서 혹독한 고문을 당한 후 당시 그리스도인 박해를 위해 트라키아(Thracia, 발칸 반도 남동부 지역으로 오늘날 불가리아 남부, 그리스 북동부, 튀르키예의 유럽 지역에 해당한다)에 파견된 티베리우스에게 넘겨져 그가 있는 마르키아노폴리스(Marcianopolis)까지 이송이 결정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가는 곳마다 혹독한 고문과 구타를 견뎌야만 했다. 마침내 성 알렉산데르는 사형 선고를 받고 드리지파라(Drizipara, 오늘날 튀르키예의 카리스티란[Karistiran] 인근에 고대 도시 유적지가 있다)라는 곳으로 끌려가 참수형으로 순교한 후 시신은 강에 던져졌다. 전승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인 피메니아(Pimenia)가 천사의 알림을 받고 아들의 순교 여정을 뒤따라가서 직접 순교 장면을 목격했다고 한다. 피메니아는 강에 던져진 아들의 시신을 수습했는데, 어떤 전승에 따르면 네 마리의 개를 이용해 시신을 건져 올렸다고 한다. 그의 무덤에서 치유 기적이 일어나면서 그에 대한 공경이 6세기경부터 활발해졌다. 그의 무덤 위에 그를 기념하는 성당이 세워졌는데, 591년 아바르족(Avars)의 침략으로 성당이 불타고 성 알렉산데르의 유물함까지 약탈 · 훼손당했다고 한다. 옛 “로마 순교록”은 3월 27일 목록에서 로마 제국의 속주인 판노니아(Pannonia)의 드리지파라에서 막시미아누스 황제 시대의 군인이었던 성 알렉산데르가 그리스도를 위해 많은 고난을 극복하고 수많은 기적을 행했으며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드리지파라는 트라키아에 속한 도시인데 후대의 기록에서 혼동된 듯하다. 성 알렉산데르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부족하고 불확실하며 다른 순교자의 이야기와 섞였을 가능성도 있기에,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그의 이름을 더는 기록하지 않았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그의 축일을 5월 13일 또는 26일에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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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호 | 성인명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수 |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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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알렉산데르(3. ...] | 출처 AI 제미나이 | 손상수 | 2026/07/02 | 152 |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