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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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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이사야 (Isaiah)
축일 5월 9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구약인물, 예언자,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8세기BC
같은이름 이사이아스, 이사이야
성인 기본정보

   “야(훼님)는 구원이시다” 또는 “야훼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성 이사이아스(Isaias, 또는 이사야)는 기원전 760년경 아모츠라는 사람의 아들로 태어났다(이사 1,1). 그 밖에 그의 가족이나 출신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다만 그가 사용하는 문체나 언어 기법, 도시인들이 즐겨 쓰는 은유, 또 예루살렘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 때문에 그를 이 도성 출신으로 추론할 수 있다. 임금이 궁궐 밖으로 시찰 나갔을 때 그가 어려움 없이 접근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7,3), 귀족이었다는 추측이 강하게 제기된다. 그렇지만 이 구절은 이사야가 귀족처럼 왕궁을 수시로 드나들 수 없었다는 방증이 될 수도 있다. 또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소명 환시를 근거로 이사야가 사제였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사야의 소명을 전하는 6장의 배경은 성전 안팎 모두가 될 수 있다. 6장의 환시를 보기 위해서 이사야가 굳이 사제여야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격조 높은 문체를 구사하고 강력한 웅변력을 발휘하는 이사야가 평범한 집안 이상의 출신으로 고급 교육까지 받았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추론할 수 있다. 그런 기초가 있었기에 이사야는 임금이나 조정과 논쟁을 벌이고, 그들의 종교 · 정치 · 사회 정책에 관해 논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출신은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사야에게는 아모스(Amos)나 호세아(Hosea) 예언자처럼 ‘광야 전통’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집트 탈출 등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를 알지만 별다르게 언급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사실로도 그가 ‘시나이 계약’과 함께 선택된 민족의 두 기둥을 이루는 ‘다윗 계약’(2사무 7장)을 강조하는 예루살렘에서, 그리고 왕실과 가까운 계층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리라고 짐작하는 것이다. 이사야의 사생활은 그의 사명 수행과 관련된 사항만 몇 가지 간략히 제시되었다. 그는 ‘여예언자’와 혼인하는데 두 아들에게 모두 상징적 이름을 붙였다(7,3; 8,3). 자식들의 이름까지 동원하여 자기의 메시지를 가시적으로 선포한 것이다(8,18). 이렇듯 이사야 예언자는 혼인과 가정생활까지 통틀어 온몸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명을 수행하였다.

   이사야서는 시편을 제외하고 구약성경에서 가장 많은 66장의 방대한 분량을 지니고 있다. 바빌론 유배 시기를 기준으로 예언서를 분류할 때, 이사야서는 이 세 시기를 모두 배경으로 삼고 있다. 제1부는 1-39장까지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펼치는 바빌론 유배 이전의 이야기이다. 제2부는 40-55장으로 바빌론 유배 중의 이야기로 타향에서 고통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위로의 말씀과 함께 유배가 거의 끝나갈 때가 되었다는 희망을 전해준다. 제3부는 56-66장으로 유배가 끝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새로운 하느님 백성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그래서 ‘이사야서’는 책 전체를 뜻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제1부만을 가리킨다. 나머지 제2부와 제3부는 다른 예언자가 거론되지 않기 때문에 보통 ‘제2 이사야서’, ‘제3 이사야서’라고 부른다. 이사야서는 구약성경 중에서 시편 다음으로 신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성경으로 임마누엘 예수님의 탄생과 수난과 죽음 등 예수님의 구원 역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이 많다.

   이사야 예언자는 “우찌야 왕이 죽던 해”(기원전 740년)에 소명을 받고(6,1) 그 뒤에 세 임금(요탐, 아하즈, 히즈키야) 치하에서 활동하였다(1,1). 그에 대한 마지막 말을 듣게 되는 것은 아시리아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위협하던 기원전 701년이다.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6일 목록에서 이사야 예언자가 므나쎄 왕 시기(기원전 687-642년)에 예루살렘에서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그를 순교자로 여기며 축일을 기념해 왔다. 하지만 이사야 예언자가 순교했다는 전통은 성경에 언급된 것이 아니라 외경에 속한 이야기다(이사야의 승천; 에녹 11,37). 이사야서의 머리글(1,1)에 따르면 이사야가 박해자 므나쎄 왕 시기에는 살지 않았음이 확실하다. 그런데 므나쎄 왕은 온갖 외국 종교 관습을 끌어들였고, 주 하느님을 충실히 믿고 따르는 자들을 심하게 박해하였다. 바로 이 점에 근거하여 이사야가 순교했을 것으로 여기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이사야 예언자에 관해 소개하면서 유다인들 사이에서 그가 므나쎄 왕 치하에서 순교했다는 말이 전해진다는 언급과 함께 기념일을 동방 정교회와 같은 날인 5월 9일로 변경하여 기록하였다.♣

참고자료

  • 폴 보샹 저, 이용권 역, 성경인물50 - 이사야, 서울(생활성서), 2014년, 251-266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9권 - '이사야서',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2년, 6981-69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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