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로쿠스 곤살레스 데 산타 크루스(Rochus Gonzalez de Santa Cruz, 또는 로코 곤살레스)는 1576년 11월 17일 남아메리카 파라과이의 아순시온(Asuncion)에서 에스파냐의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와 외할아버지 모두 에스파냐 출신 정복자(개척자)로서 초기에 남아메리카에 정착한 저명한 가문 출신이었다. 어려서부터 신앙심이 강했던 그는 부모로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착하고 신심 깊은 소년으로 성장했다. 그 지역에 원주민이 많았기에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과라니어와 에스파냐어를 모두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그는 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가 1599년 3월 25일 23살의 나이에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아순시온 주변 인디오 원주민들의 선교사로서 사목 활동을 시작했고, 파라과이와 브라질 남부에 거주하는 과라니족(Guarani people)에게 큰 관심을 두고 그들이 사는 외딴곳까지 찾아가 복음을 전했다. 그의 성공적인 선교활동을 보고 1608년에 지역 주교가 그를 아순시온 대성당의 사목을 맡기고자 불러들였고, 이듬해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살던 주교가 그를 총대리로 임명할 계획이라는 소문을 돌았다. 하지만 원주민에 대한 선교활동에 전념하길 원했던 성 로코 곤살레스는 1609년 5월 8일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성 로코 곤살레스는 6개월의 수련 후 과라니족 선교를 위해 파견되었다. 이미 그들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기에 적응에 어려움은 없었다. 그리고 1611년부터 당시 태동하고 있던 인디오 원주민을 위한 정착촌인 레두시온(reducciones)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당시 남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에서 제국주의를 앞세워 자행되던 에스파냐의 가혹한 식민지 정책으로 인해 그 지역의 원주민들이 무참히 짓밟히고 착취당하는 것에 가슴 아파하며 당국의 횡포에 격렬히 저항하였다. 아울러 이러한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자급자족이 가능한 원주민 중심의 마을 공동체인 레두시온을 건설하는데 의욕적으로 나섰다. 그는 1611년에 예수회의 설립자인 로욜라(Loyola)의 성 이냐시오(Ignatius, 7월 31일)의 이름을 따서 건설된 최초의 레두시온인 ‘산 이그나치오 과수’(San Ignazio Guazu, 과수의 성 이냐시오 정착촌)의 책임자가 되어 3년을 봉사했다. 그 후 이 정착촌은 다른 정착촌 설립의 모델이 되었다. 그 뒤로 성 로코 곤살레스는 오늘날의 브라질 남부와 파라과이,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북동부를 흐르는 파라나강(Rio Parana)과 우루과이강(Rio Uruguay) 유역에 새로운 정착지를 건설하기 위해 떠났다. 이렇게 정착촌을 설립하면서 성 로코 곤살레스는 원주민들의 권리와 생존권을 수호하기 위해 제국주의에 강력히 맞서 싸우면서 원주민에 대한 선교활동을 전개하였다. 1626년에 그는 우루과이와 파라나 지역 선교부의 책임자가 되었고, 원주민에 대한 존중과 헌신으로 인해 인디오 원주민 사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식민정부 당국은 그의 영향력을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려 했고 번번이 그의 활동을 방해하였다. 그래서 성 로코 곤살레스는 정복자인 에스파냐 당국의 공개적인 반대와 억압을 받기도 했고, 동시에 정복자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일부 원주민들의 적대감도 이겨내야 했다. 1628년에 그는 파라과이 남동부 이타푸아(Itapua)의 ‘주님 강생 정착촌’에서 두 명의 젊은 에스파냐 출신 예수회 신부를 만났다. 그들은 성 알폰소 로드리게스(Alfonsus Rodriguez)와 성 요한 데 카스티요(Joannes de Castillo, 11월 17일)로 성 로코 곤살레스보다는 스무 살 정도 어렸으나 열정적인 선교사들이었다. 성 알폰소 로드리게스는 1598년 에스파냐 서부의 사모라(Zamora)에서 태어나 1614년 3월 25일 예수회에 입회했고, 1616년에 아메리카 선교부로 발령받아 에스파냐를 떠나 그보다 두 살 많은 성 요한 데 카스티요와 함께 배를 타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항구에 도착했다. 성 요한 데 카스티요는 1596년 에스파냐 톨레도(Toledo) 지방의 벨몬테(Belmonte)에서 태어났다. 그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알칼라(Alcala) 대학교에 들어갔는데, 공부를 시작한 첫해에 자신에게 예수회 성소가 있음을 깨닫고 1614년 3월 21일 마드리드(Madrid)에서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그리고 1616년 에스파냐령 아메리카 선교사로 가던 중 성 알폰소 로드리게스를 만나 함께하게 되었다. 그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후 코르도바(Cordoba)로 가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며 선교사의 길을 준비했다. 성 알폰소 로드리게스는 1624년 사제품을 받고 파라과이의 정착촌으로 떠났고, 성 요한 데 카스티요는 1625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그리고 1628년 두 명의 젊은 예수회 신부는 이타푸아 정착촌에서 경험 많은 선교사인 성 로코 곤살레스 신부를 만나게 된 것이다. 성 로코 곤살레스는 그들에게 원주민을 위한 정착촌 건립과 선교활동을 함께 할 것을 요청했고, 기꺼이 동참한 젊은 신부들과 함께 그해 9월 15일에 이주히강(Ijuhi R.) 근처에 새로 건설한 ‘성모 승천 정착촌’을 봉헌하였다. 이 정착촌은 나중에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으로 발전하였다. 성 로코 곤살레스는 성모 승천 정착촌을 성 요한 데 카스티요에게 맡기고, 성 알폰소 로드리게스와 함께 더 깊은 숲속에 사는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늘날 브라질 남단의 카로(Caaro)로 가서 새로운 정착촌을 만들었다. 11월 1일 ‘모든 성인의 정착촌’을 세우고 성당도 봉헌하였다. 하지만 그 지역에서 큰 힘을 갖고 다스리던 네수(Nezu)라는 주술사의 반대에 부딪혔다. 주술사는 여러 명의 아내가 있었고 자신의 영향력과 이권이 예수회원들에 의해 축소되는 것을 두려워해 그들을 증오하고 죽여야 한다며 사람들을 선동하였다. 결국 11월 15일 성 로코 곤살레스와 성 알폰소 로드리게스 신부가 모든 성인의 성당에 작은 종을 설치하고 있을 때 주술사가 보낸 사람이 몰래 접근해 토마호크 도끼로 두 신부의 머리를 쳐서 차례로 살해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시신을 성당에 두고 제단을 파괴한 후 제구와 제의 등을 쌓은 다음 성당에 불을 질렀다. 그 자리에 없었던 성 요한 데 카스티요 신부는 두 신부가 순교한 지 이틀 후에야 그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주술사와 그 일행은 이미 그마저 살해할 계획을 하고 있었다. 결국 11월 17일 성모 승천 정착촌을 공격한 원주민들은 성무일도를 바치고 있던 성 요한 데 카스티요에게 접근한 후 그를 붙잡아 결박한 후 잔인하게 구타하고 숲으로 데려가서 돌을 던져 때려죽였다. 그리고 시신을 불살랐다. 그 뒤로도 여러 정착촌에서 예수회원들이 살해되는 일이 발생했다. 성 요한 데 카스티요의 시신은 나중에 동료들에 의해 수습되어 1633년에 ‘원죄 없으신 잉태 정착촌’에 묻혔다. 화살에 찔린 성 로코 곤살레스 신부의 심장과 그를 살해한 도끼는 같은 해에 로마(Roma)로 옮겨졌다가 1928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예수회 대학 성당으로 옮겨졌고 오래지 않아 아순시온의 순교자 성당으로 옮겨 모셨다. 성 로코 곤살레스와 두 명의 동료 순교자에 대한 시복 절차는 빠르게 시작되었으나 불행하게도 관련 문서가 로마로 가는 도중 분실되어 오랫동안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하다가 뒤늦게 200여 년이 지난 후 사본 문서가 아르헨티나에서 발견되었다. 성 로코 곤살레스와 동료 순교자들은 1934년 1월 28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파라과이의 순교자로 그리고 남아메리카 최초의 순교자로서 복자품에 올랐다. 그리고 1988년 5월 16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파라과이의 아순시온에서 시성되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시성식 강론을 통해 원주민들의 불신과 황무지라는 악조건 속에서 순수한 열정과 헌신으로 복음을 전한 순교자들이 뿌린 씨앗이 자라나 많은 이가 개종하여 참된 신앙의 빛 안으로 들어왔다며 그들을 모든 그리스도인의 귀감으로 소개하였다. 한편 성 로코 곤살레스의 생애는 롤랑 조페(Roland Joffe) 감독의 영화 ‘미션’(The Mission, 1986년)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1월 15일 목록에서 예수회 사제이자 순교자인 성 로코 곤살레스와 성 알폰소 로드리게스가 파라과이의 카로 지역에서 원주민들이 일과 자유로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레두시온’이란 정착촌을 만들어 원주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는데, 원주민 주술사가 보낸 암살자의 공격으로 살해되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11월 17일 목록에서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예수회 신부이자 순교자인 성 요한 데 카스티요가 성 로코 곤살레스가 설립하고 그에게 맡긴 정착촌에서 원주민들의 공격을 받아 잔인한 고문을 당한 후 그리스도를 위해 돌에 맞아 죽었다고 기록하였다. 성 알폰소 로드리게스는 성 알론소 로드리게스(Alonso Rodriquez)로도 불린다. 예수회에서는 이들 세 명의 순교자들의 축일을 11월 16일에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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