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볼로냐(Bologna)의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았던 마르코 판투치(Marcus Fantucci)는 26세의 나이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서약을 하였다. 그는 3년 후에 몬테 콜롬보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되었으나, 그의 설교가 뛰어났으므로 카페스트라노(Capestrano)의 성 요한(Joannes, 10월 23일)으로부터 관구 밖에서도 설교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았다. 두 번이나 관구장을 역임한 그는 후에 총장까지 되었다. 그는 여러 가지 개혁 운동을 일으켜 설립자의 정신을 회복하려고 애를 썼고, 터키에 포로가 된 회원들을 구출하려고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는 교황 바오로 2세(Paulus II)가 그를 추기경으로 임명하려는 눈치를 채고 시칠리아(Sicilia)로 잠적한 적이 있다. 그는 피아첸차(Piacenza)에서 사순절 선교활동을 하던 중에 병을 얻어 선종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68년에 승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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