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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레미기우스 이소레(또는 레미지오 이소레, 중국명 조석진[趙席珍])는 1852년 1월 22일 벨기에와 국경을 접한 프랑스 북부 방베크(Bambecque)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였고, 형제 중 장남이었던 그의 남동생 가운데 하나는 사제가 되었으며 여동생은 성 빈첸시오 드 폴(Vincentius de Paul, 9월 27일)이 설립한 애덕의 수녀회(Soeurs de la Charite)에 입회하였다. 어려서부터 신앙심이 깊었던 그를 눈여겨본 본당신부는 그가 사제가 되기를 바라며 라틴어를 가르쳤다. 13살 때 성 레미지오 이소레는 아즈부르크(Hazebrouck)의 생프랑수아 다시즈 콜레주(College Saint-Francois d’Assise)에 입학해 공부하며 자신의 성소를 깨달았다. 그는 19살이 된 1871년에 교구사제가 되기 위해 캉브레(Cambrai) 신학교에 입학했고,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후 사제품을 받기 전에 예수회에 들어갈 마음을 굳혔다. 성 레미지오 이소레는 1875년 11월 20일, 성 레오 이냐시오 망쟁(Leo Ignatius Mangin)이 수련을 시작한 지 불과 15일 뒤에 아미앵(Amiens)의 생아슐(Saint-Acheul) 수련원에서 예수회에 입회해 수련기를 시작했다. 그는 절제력이 뛰어나고 겸손하며 남을 돕는데 헌신적인 학생이었다. 성 레미지오 이소레는 수련기와 철학 공부를 마치고 1879년 아미앵의 라 프로비당스(La Providence)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저지섬(Jersey Is.)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중에 중국 순방을 마치고 그곳을 지나가던 예수회의 관구장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아프리카 잠비아의 선교사로 파견해달라고 요청하며 기회가 되면 순교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관구장은 그렇다면 더 좋은 기회가 중국에 있다고 추천해주었다. 그때 성 레미지오 이소레는 미처 생각지도 않던 중국 선교가 자신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뜻임을 깨닫게 되어 기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1882년 중국으로 파견된 그는 허베이성(河北省)에 도착해 중국어와 신학 과정을 마치고 성 레오 이냐시오 망쟁과 함께 1886년 7월 31일 중국 하북성 현현 장가장(河北省 獻縣 張家莊) 주교좌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사제품 후에 그는 장가장 학교의 교사로 임명되어 성 바오로 덴(Paulus Denn) 신부의 보좌로 일하다가 나중에 학교의 행정 책임자가 되었다. 그리고 1897년부터 톈진(天津) 인근의 웨이시엔(蔚縣)에서 활동했다. 그는 잠시 웨이시엔을 떠나 시엔시엔(獻縣)에 있는 예수회 공동체에서 휴식을 취하던 1900년 6월 17일, 의화단이 웨이시엔 인근에서 활동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청나라 말기인 1899년 11월 중국 산동(山東)과 화북(華北) 지방에서 서양 제국주의의 침탈에 맞서 나라를 지키고 서양인들과 그리스도교를 몰아내려는 ‘의화단(義和團) 운동’이 일어나면서 가톨릭교회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선교지 신자들의 안위를 걱정한 성 레미지오 이소레 신부는 다음날인 1900년 6월 18일에 웨이시엔으로 출발했다. 정오쯤 우이시엔(武義縣)을 지나게 되었는데, 마침 그 마을에는 예수회 동료인 성 모데스토 앙들로에(Modestus Andlauer) 신부가 활동 중이었다. 성 레미지오 이소레는 이 위급한 시기에 그를 홀로 남겨둘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미 성문 밖에 의화단의 상징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그를 방문하기로 했다. 1882년 함께 중국으로 파견된 두 사람은 의화단 운동 중에 다시 만나 머지않아 맞이할 순교의 순간을 기다리며 밤을 새워 기도했다. 6월 19일 오후에 의화단이 그들의 숙소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얼른 성당으로 피했으나 의화단이 성당 문을 부수고 쳐들어왔다. 의화단은 성당에서 무릎 꿇고 기도 중인 신부들에게 달려들어 창으로 마구 찔러댔고, 제단 위는 금방 피로 흥건해졌다. 다음날 의화단은 그리스도를 믿는 중국인이 조상들의 종교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기 위해 사제들의 머리를 참수해 마을 입구에 효수하였다. 그리하여 성 레미지오 이소레와 성 모데스토 앙들로에 신부는 중국에서 의화단 운동 중에 순교한 최초의 예수회원들이 되었다. 성 레미지오 이소레와 성 모데스토 앙들로에 신부는 1955년 4월 17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의화단 운동으로 인해 순교한 예수회 선교사 성 레오 이냐시오 망쟁과 성 바오로 덴 신부와 52명의 중국인 동료 순교자들과 함께 시복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2000년 10월 1일, 선교의 수호자이자 중국 교회와 그곳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했던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대축일’(현재는 기념일)에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 아우구스티노 자오룽(Augustinus Zhao Rong) 사제와 동료 119위 순교자들’의 일원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120위 중국 순교 성인들의 축일은 처음에는 9월 28일에 기념했으나 2002년 1월 대만 주교단의 사도좌 정기방문 중에 교황청 경신성사성 장관으로부터 ‘성 아우구스티누스 자오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을 7월 9일로 정해 로마 보편 전례력 안에서 기념하게 되었음을 전해 들고 매년 7월 9일 전례 안에서 기념하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그들이 순교한 6월 19일 목록에서 중국 허베이성(河北省)의 웨이시엔 근처 우이시엔 마을에서 예수회 소속 사제인 성 레미지오 이소레와 성 모데스토 앙들로에가 의화단의 박해 기간에 제단 앞에서 기도하던 중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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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호 | 성인명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수 |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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