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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난시오(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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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베난시오 (Venantius)
축일 5월 18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소년, 순교자
활동지역 카메리노(Camerino)
활동연도 +251년?
같은이름 베난시우스, 베난씨오, 베난씨우스, 베난티오, 베난티우스
성인 기본정보

   이탈리아 중부 카메리노에서 큰 공경을 받는 성 베난티우스(또는 베난시오) 순교자의 생애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다. 그에 대해 전해지는 전설적 이야기는 아마도 프레네스테의 아가피투스(Agapitus von Praeneste)가 쓴 “수난기”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성 베난시오는 그 “수난기”의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고, 그 책을 통해 그의 출생과 수난 사실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 책에 따르면, 성 베난시오는 귀족 출신으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후 포르피리우스라는 사제와 함께 살았다. 그는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안코나(Ancona) 부근 카메리노에서 총독 안티오쿠스 앞에 끌려가 배교를 강요당했다. 그러나 15살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당히 신앙을 고백했고, 총독은 그를 감옥에 가두고 심한 고문을 자행했다. 그는 매를 심하게 맞아 이가 모두 빠지고 턱뼈가 부서지는 고통을 당했고, 불 위에 거꾸로 매달려 열기와 연기에 그을리는 형벌을 비롯해 참혹한 고문 끝에 참수형을 받고 다른 열 명의 동료들과 함께 순교했다. 그가 죽자마자 그를 재판했던 두 명의 재판관이 급사하고, 지진이 일어나 사람들이 모두 베난시오를 성인으로 공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그의 유해는 641년에 다른 순교자들의 유해와 함께 교황 요한 4세(Joannes IV)에 의해 로마로 옮겨져 라테라노(Laterano) 대성전 근처의 한 경당에 모셔졌다고 한다. 그에 대한 공경 예식은 로마에서부터 시작되어 나중에 카메리노로 전해졌다고 한다. 카메리노에서 성 베난시오는 그 지역의 주보 성인으로 공경을 받아왔는데, 은판으로 장식된 성해함과 그곳에만 있는 그의 순교 모습을 담은 그림 등은 카메리노에서 그에 대한 공경이 일찍부터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14세기경의 한 시(詩)의 기록에 따르면, 13세기 중엽 시칠리아 군대의 침략으로 카메리노가 파괴될 때 성 베난시오의 유해가 나폴리(Napoli)로 약탈당하였으나 교황 클레멘스 4세(Clemens IV, 1265~1268년 재위)의 중재로 카메리노로 반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전에 카메리노의 주교였다가 교황이 된 클레멘스 10세(1670~1676년 재위)는 성 베난시오에 대한 특별한 신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축일을 격상시키고 또 성인의 축일 성무일도에 적합한 찬미가를 작곡하기도 했다.

   한편 성 베난시오는 아드리아해(Adriatic Sea)에 접한 달마티아(Dalmatia) 지방 살로나(Salona, 오늘날 크로아티아의 스플리트[Split])의 주교이자 순교자로서 로마에서 공경받는 성 베난시오(4월 1일)와 동일 인물로 추정되기도 하는데, 확인할 길은 없다. 옛 “로마 순교록”은 5월 18일 목록에서 성 베난시오 소년 순교자에 대해 기록했으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그에 대한 기록을 삭제하였다. 다만 옛 “로마 순교록”이 4월 1일 목록에서 로마에서 공경받는 성 베난시오 주교 순교자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한 것에 비해, 개정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성 베난시오 주교 순교자와 함께 달마티아(Dalmatia)와 이스트리아(Istria) 반도에서 온 동료 순교자들(8명)이 로마에서 공경을 받는다고 기록하였다.♣

참고자료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5권 - '베난시오, 카메리노의',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7년, 3278쪽.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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