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교회음악 칼럼] 지극히 평범한 일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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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크리스티나 | 작성일2022-02-23 | 조회수1,742 | 추천수2 | |
월간 <빛> 2월 교회음악 칼럼 https://www.lightzine.co.kr/magazine.html?p=v&num=4478
지극히 평범한 일상
글. 여명진 크리스티나
▲ 지거 쾨더 신부, <제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성벽을 뛰어넘습니다>, 독일 지거쾨더 박물관
성당에서의 한해는 전례력을 따라 흘러갑니다.
대림과 성탄, 사순과 부활시기는 물론이고, 성모 성월, 순교자 성월 등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기들을 기리며 지내다 보면 한해가 정말 빠르게 지나갑니다. 이렇게 쏜살같이 지나가는 1년 중 가장 긴 시기는 바로 ‘연중시기’입니다. 1년 52주 중 33주나 차지하는 긴 시기이지만, 특정한 순간들을 성대하게 기념하는 다른 시기와 달리 평범한 일상이라 느껴지기에 무심히 지나 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시대를 살며, 이 ‘평범함’의 중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실감했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로 인해 일상이 순식간에 마비되었고, 신자들과 함께 하는 모든 미사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기도 했습니다. 일상이 무너지는 혼란의 시간 앞에 우리는 공포와 두려움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지금보다 의료 수준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았던 14세기 경 유럽에서는 흑사병이 창궐했고, 유럽에서만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죽음은 나이와 신분, 직업을 가리지 않고 찾아왔기에, 음악가 자신이 목숨을 잃기도 했고, 소중한 가족 중 누군가를 잃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의 음악가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공포와 두려움, 절망감을 표현하고, 음악 안에 희망을 담아냈습니다.
울리히 쯔빙글리(Huldrych Zwingli)의 〈페스트의 노래〉 스위스의 종교 개혁가였던 쯔빙글리는 취리히에서 흑사병을 직접 겪고,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습니다. 이후 그는 질병의 고통과 공포 속에서 유일한 희망이었던 신앙을 돌아보며 <페스트의 노래>라는 성가를 작곡했습니다. 그는 ‘병의 시작(Im Anfang der Krankheit)’, ‘병의 한가운데에서(Inmitten der Krankheit)’, ‘회복기에(In der Besserung)’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처절한 기도시를 써 내려갔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숨기지 않지만 질병의 고통과 절망에 머무르지 않고 회복과 희망으로 곡을 끝맺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공포 앞에서도 희망에 시선을 두었던 신앙인, 음악가들의 작품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직접적인 위로로 다가옵니다. 수백 년 전 음악이 지금을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여전히 영감을 주기도 하지만, 바이러스 또한 죽거나 소멸되지 않고 언젠가 또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2년 넘게 이어지는 코로나19 상황처럼 전염병의 불길은 언제 어디서든 다시 시작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작고 미세한 바이러스와 세균 덩어리 앞에서 무력해지는 인간의 일상은 때로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가질 뿐 또다시 그 두려움, 무력감과 어떻게 마주해 갈 것인지를 고민하고 극복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 원동력은 신앙이 될 것이고 특별한 날에도, 평범한 날에도 늘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께서 함께 걸어주실 것입니다.
2월 연중시기, 지극히 평범한 일상 안에서 늘 새롭게 하느님을 만나고 매일 조금씩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종교개혁가 울리히 쯔빙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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