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라우다떼 복음묵상(연중 제 24주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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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봉섭 | 작성일1999-09-16 | 조회수1,527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잠원성당 라우다떼성가단의 이봉섭 바오로입니다. 김종헌신부님 말씀에 따라 약속드린 대로, 저희 성가단에서 주일마다 하고 있는 복음묵상의 내용을 올립니다. 저를 비롯한 몇 사람이 돌아 가면서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공교롭게도 처음 여기에 올리는 이번 주에는 새로운 사람, 그것도 99학번 신입생이 처음으로 준비와 진행을 맡았습니다. 처음 한 것인데도 열심히 잘 준비한 티가 납니다. 그 형제가 좀더 정리를 해서 올리고 싶어해서 며칠 늦었습니다. 많이 모자라는 저희 청년들이 준비한 것이라, 아마 틀린 부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 한 마디씩 충고해 주시면 저희에게도 도움이 되겠습니다.
99. 9. 12. 연중 제 24주일 제1독서 집회 27,33-28,9(이웃의 잘못을 용서해 주어라. 그러면 네가 기도할 때에 네 죄도 사해질 것이다.) 제2독서 로마 14,7-9(우리는 살아도 주님의 것이고 죽어도 주님의 것입니다.) 복 음 마태 18,21-35(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준비 및 진행 : 김지성 스테파노>
오늘 복음 말씀을 읽고 나시면, ’아! 이거.’ 하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많이 들어서 귀에 익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오늘 복음은 이해하기에도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복음을 읽기 전에 이번 복음 묵상을 처음으로 준비하면서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이 ’혹시나 이번주 복음이 너무 어려운 것이면 어떡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저나 다른 사람들도 다 알고 있을법한 부분이더군요. 하지만 준비를 하다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알고 있는 복음인 만큼 제가 남들에게 무언가를 말해야한다는 것 때문에 더 힘들었습니다. 알고 있는 것과 가슴속에 새겨두고 아는 것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있으면 성서를 읽을 테지만, 아시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그 내용이 그냥 알고만 있어왔는지 아니면 실천을 해왔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면서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그럼 복음을 읽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마태오복음 18장 21절에서부터 3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복음 읽기---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하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왕이 자기 종들과 셈을 밝히려 하였다. 셈을 시작하자 일만 달란트나 되는 돈을 빚진 사람이 왕 앞에 끌려 왔다. 그에게 빚을 갚을 길이 없었으므로 왕은 ’네 몸과 네 처자와 너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빚을 갚아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종이 엎드려 왕에게 절하며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곧 다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애걸하였다. 왕은 그를 가엾게 여겨 빚을 탕감해 주고 놓아 보냈다. 그런데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밖에 안 되는 빚을 진 동료를 만나자 달려들어 멱살을 잡으며 ’내 빚을 갚아라’ 고 호통을 쳤다. 그 동료는 엎드려 ’꼭 갚을 터이니 조금만 참아 주게’ 하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그는 들어 주기는커녕 오히려 그 동료를 끌고 가서 빚진 돈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다른 종들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분개하여 왕에게 가서 이 일을 낱낱이 일러 바쳤다. 그러자 왕은 그 종을 불러 들여 ’이 몹쓸 종아, 네가 애걸하기에 나는 그 많은 빚을 탕감해 주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 하며 몹시 노하여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를 형리에게 넘겼다.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제 형제의 죄를 일곱 번 용서하면 어떻겠느냐고 묻습니다. 아마,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칭찬을 해주시리라 생각을 하고 우쭐거리며 말을 했을 것입니다. 보통 유대인들에게는 남의 잘못을 세 번 용서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면 일곱 번의 용서는 대단한 자비를 베푼 셈입니다. 사실 우리들이 남을 일곱 번이나 용서하는 사람을 본다면 ’참 마음이 넓다’ ’그 사람 정말 천사인가봐’ 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뜻밖에도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칭찬하시기는커녕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주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이 말씀은 몇 번의 용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듭되는 잘못을 끊임없이 언제나 용서해주라는 뜻입니다. 그 동안의 저의 모습, 또 제가 보아온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의 잘못들을 보면, 다짜고짜 따지기에 바쁘고, 용서를 한답시고 대단한 자비를 베푸는 것인 양 우쭐대었던 모습들... 이런 지금까지의 행동들을 돌아보면서 끊임없이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웃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굳이 성서에 나와 있어서라기보다는 당연스럽게 알고 있고 용서라는 말을 쉽게 내뱉습니다. 그러나 남을 용서한다는 것은 말처럼 결코 만만치만은 않습니다. 원수처럼 생각하고 지내오던 사람을 하루아침에 용서를 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서에는 오늘 복음 말고도 용서를 강조하는 구절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너희가 일어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등진 일이 생각나거든 그를 용서하여라. 그래야만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 (마르 11, 25)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제단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와 예물을 드려라." (마태 5, 23) 우리들이 거의 매일 바치고 있는 주님의 기도. 몇 분이나 알고 계셨는지는 모르지만,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우리들은 항상 주님께 용서를 다짐합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일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주님의 기도에서 이 부분은 남을 먼저 우리가 용서를 할 때에야 비로소 하느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제가하는 행동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죄를 짓고, 또 알건 모르건 간에 죄를 짓고 후회를 하게 되고 혼자서 괴로워하는 적이 많습니다. 하지만, 성당에 와서 고백성사를 본 후, 그 때만큼만은 홀가분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는 좀 그렇지만 아마 여러분들도 이러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남들보다 신앙심이 깊은 것도 아닌데, 왜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되는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물론, 주님께 저의 죄를 고백하고 저의 죄과 사하여졌다는 믿음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듭니다. 고백성사를 보고 났을 때의 이 기분은 누군가 저의 잘못을 용서해주었을 때의 기분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묵상을 하는 시간을 갖기 전에 그동안 자신이 남에게 저지른 죄들을 되들을 돌아보고 그때 한 번이라도 그 사람에게서 용서를 받아 본적이 있다면 자기가 남을 용서했을 때 용서받는 사람은 어떻게 느낄 것인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으면 합니다. 이번 성서묵상을 준비하고 저의 행동들을 뒤돌아보면서 제가 누군가를 용서했던 일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용서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말로는 용서를 한다고 했지만, 전처럼 그를 신뢰하고 있지 않은 저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결국 저는 그 사람을 반밖에 용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니 애초에 저는 그 사람을 용서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2분간묵상---
주님, 주님은 저희에게 반만 용서해 주시지 않으신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제나 온전히 용서해주시지요. 저희가 서로를 신뢰할 수 있게 될 때 저희는 서로를 용서를 할 수 있고 그때서야 주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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