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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제13주일]라우다떼복음묵상
작성자김지성 쪽지 캡슐 작성일2000-07-02 조회수669 추천수3 반대(0) 신고

2000년 7월 2일 연중 제13주일

〈준비 및 진행 : 김지성 스테파노〉

 

 †오늘 복음은 마르코 복음 5장 21∼43 까지의 말씀입니다.<또는 5,21∼24. 35∼43>

 

그 때에 예수께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시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예수께서 호숫가에 계셨을 때에 야이로라 하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를

뵙고 그 발 앞에 엎드려 "제 어린 딸이 다 죽게 되었습니다. 제 집에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어 병을 고쳐 살려 주십시오."하고 애원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를 따라 나서시었다. 그 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둘러싸고 밀어 대며 따라갔다.

<그런데 군중 속에는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증으로 앓고 있던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여러 의사에게 보이느라고 고생만 하고 가산마저 탕진했는데도

아무 효험도 없이 오히려 병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러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군중 속에 끼여 따라가다가 뒤에서 예수의 옷에 손을 대었다.

그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으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손을 대자마자 그 여자는 과연 출혈이 그치고 병이 나은 것을 스스로 알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곧 자기에게서 기적이 나간 것을 아시고 돌아서서 군중을 둘러

보시며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은 "누가 손을 대다니요? 보시다시피 이렇게 군중이 사방에서 밀어

대고 있지 않습니까?" 하고 반문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둘러보시며

옷에 손을 댄 여자를 찾으셨다.

그 여자는 아기 몸에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예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병이 완전히

나았으니 안심하고 가거라."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의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저 선생님께 폐를 더 끼쳐 드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이 말을 들은 체도 아니하시고 회당장에게 "걱정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따라 오지 못하게 하시고 회당장의 집으로 가셨다.

예수께서는 거기서 사람들이 울며불며 떠드는 것을 보시고 집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왜 떠들며 울고 있느냐? 그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잠을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코웃음만 쳤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다 내보내신 다음에 아이의 부모와

세 제자만 데리시고 아이가 누워 있는 방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고

"탈리다, 쿰!"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소녀야, 어서 일어나거라.’라는 뜻이다.

그러자 소녀는 곧 일어나서 것어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놀라 마지않았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시고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두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는 하혈증이라는 병으로 앓고 있던 한 여자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어 그 병이 씻은 듯이 낳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의 죽은 딸이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입니다. 이 두 이야기에서 우리는 한가지 공통점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병을 앓던 여인이나 야이로라는 회당장 모두 예수님에 대한 굳은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성당에 처음 다니기 시작한 때가 제가 초등학교3학년이었을 때였는데, 그 때 성당에 갔던 것은 예전부터 그 곳에 다니는 친구들이 굉장히 부러워서였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 그 때만 하더라도 학교에서 종교에 관한 조사를 하고 교회나 절에 다니는 사람은 손들어보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실 때 손드는 애들이 정말 대단하게 보였습니다. 어렸을 때 저 자신도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 아무래도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뭔가 다른 생활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나 합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어렸을 때의 일이고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을 생각해봅니다. 거기에는 오늘 복음 속에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야이로의 부탁을 받고 길을 나서는 예수님의 행렬에 끼지 않았던 사람들도 포함이 됩니다. 그리고 다음 부류로 예수님의 행렬에 낀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예수님을 왜 따라나섰는지. 그 동안 많이 들어온 예수님의 기적을 볼 수 있을까하는 약간의 기대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행렬에 끼지 않은 사람들보다는 조금이나마 믿음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등장인물로 오늘 복음 속의 주인공격인 야이로와 병을 앓고 있는 이름 모르는 여인입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너는 니가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냐?’고 물으면 ’예’ 나 ’아니오’로만은 대답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복음 속의 등장인물을 제 나름대로 나누어 본 세 분류로 생각해볼 때, 저 자신은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에 가깝지 않나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 길을 떠나는 예수님을 따라 나섰을 때에만 하더라도 믿음이 있다고 생각했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고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알리러 왔을 때. 그 때부터 마음 속에는 조금씩 의심하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병을 고치는 것까지는 모르겠는데, 설마 죽은 사람까지 살릴 수 있을까? 이렇게 어중간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를 하게 되면 결국에는 그저 저 자신에 대한 기도 정도로 끝나고, 믿음을 가지고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굳건한 믿음을 갖게 도와달라는 기도를 하게 되는 저를 발견합니다. 결국, 야이로나 병에 걸린 여인(그들에게 왜 예수님이 병을 치료해 줄 것으로 믿냐고 물었다면 너무나 당연스럽게 생각해 온 일들이라 아마 대답할 수 없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들이 정말 아무런 의식 없이 믿었던 그런 믿음을 너무 어렵게만 생각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믿고 기도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될 것을 항상 내 기도를 듣고 계실 하느님을 억지로 상상해 내고, 기도를 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려나 은근히 바라고... 이러한 인위적인 생각들이 오히려 믿음의 장애가 된 것입니다.

 결국, 저나 믿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단지 믿는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걱정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라는 예수님의 말처럼 말이지요.

 

- 2분간 묵상 -

 

 주님께서 현존하고 항상 저희와 함께 계시다는 것. 그 동안의 인위적인 저희의 감정들이 오히려 주님께 다가가는 데에 장애가 됨을 깨닫습니다. 저희는 기도를 합니다. 단지 주님께 원하고 단지 주님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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