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윤 수녀의 성서말씀나누기] 아가 (1) : 일반적 특징 모든 것을 다 바친 사랑, 인간이 추구해야할 진리 윈도우XP 프로그램을 부팅 시킬 때 처음에 등장하는 말이 있다. 「새로운 시작」.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결국은 새로운 시작임을,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진작부터 알았던 것일까. 얼마나 많은 실패를 만나고도 다시 일어났길래, 매순간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각오를 컴퓨터에까지 각인시켜놓은 것일까…. 새로운 시작이 너무도 간절했던, 폭염과 폭풍의 여름이었다. 이제 이 지면도 새로운 시작을 대면하고 있다. 아가서를 시작할 순서에 와있기 때문이다. 아가(雅歌)는 글자 그대로 「사랑의 노래」이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되었다는 것은, 즐거움과 설레임이지만 동시에 부담이기도 하다. 「하느님께로 향하는 이 애절한 사랑의 노래를 정말이지 인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막막함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아래 새로운 것이 없음을 반복하는 전도서를 지난 여름 그 뜨거운 폭염 속에서 만나고, 이제 사랑을 노래하는 아가서를 가을의 문턱에서 읽게 되었다는 것은, 필자에게는 감동스런 하느님의 섭리이며 행운이다. 그러고 보니, 가을이 오면서 아가서를 보게된 것이 아니라, 아가서를 보기 위해 가을이 와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반적 특징 1) 축제 두루마리의 첫 번째 책 이미 설명한 바 있지만, 「메길롯」(Megillot, 축제 두루마리)이라고 불리는 다섯개의 책들은 이스라엘의 주요 축제 때 낭독된 것들이다. 아가서는 특별히 과월절에 낭독되었는데, 과월절이 유다인들의 가장 중요한 축제임을 기억한다면, 그리고 축제의 절정인 제7일에 이 책이 낭독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유다인들이 아가서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하게 된다. 즉, 그들은 아가서의 내용을 통해, 하느님에 대한 절실한 사랑을, 과월절 축제 때마다 기억했던 것이다. 사실 아가서는 「메길롯」 중 첫 번째로 등장하는 책이다. 그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인데, 우리가 아가서보다 전도서를 먼저 살펴보았던 이유는 전도서가 이미 읽어온 욥기, 잠언 등과 지혜문학적 성격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임을 밝혀둔다. 2) 부재하는 신앙관련 구절 특이하게도, 아가서에는 야훼 혹은 하느님이라는 단어가 한번도 등장하지 않고, 신앙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들도 부재한다. 시종일관 남녀간의 절절한 사랑 모티브만 지속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가서는 신약성서에서 단 한번도 인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이스라엘의 최고 축제인 과월절 전례 중 낭독되었다는 것은 고대 근동지역 경신례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집트, 바빌론, 가나안의 문명권에서는 남신(男神)과 여신(女神)의 관계성을 특별히 강조하는 신화 이데올로기가 부각되어 있었고, 그들은 세상의 모든 사건들을 남신과 여신의 조화로 이해하고 있었다. 마치 동양 문화권에서 음양의 조화로 세상의 이치를 보는 경향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대 근동의 경신례에서는 언제나 남녀간의 사랑을 다룬 시편들이 낭독되었고, 아가서의 과월절 낭독과 정경화는 이러한 맥락 안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아가서를 어떻게 시작할까 고민하며 원고를 쓰기 시작한 날, 수도자들의 독서기도는 정확한답을 제시해 주었다. 그 날은 마침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기념일이었는데, 그의 「아가서 주해」가 성무일도 독서기도로 채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성인은 『사랑의 열매는 사랑하는 것-바로 그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랑하는 것 그 자체가 곧 사랑의 결과라는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사랑은 없다는 복음서의 가르침은 「그를 위해 죽을 수 있는 마음」이 곧 사랑임을 제시해준다. 하느님을 위해 죽을 수 있는게 하느님 사랑이고, 자식을 위해 죽을 수 있는게 부모의 사랑이다. 『사랑한다』라는 말을 간절히 세번 반복하는 TV 광고가 전파를 타고 있다. 그토록 진부하게 여겨지던 『사랑한다』는 말이, 결국은 마음을 다하여 인간이 추구해야할 가장 중요한 진리임을 다시금 기억하게 하는, 가슴 뭉클한 광고였다. 당신이 지금 누구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다면 정말 정직하게, 온 마음과 정신을 다해, 자문해볼 일이다. 그를 위해 죽을 수 있는지, 정말 그토록 간절하게 사랑한다고 일말의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는지를…. 아니라면 그건 가짜 사랑일 수 있으니. [가톨릭신문, 2004년 8월 29일, 김혜윤 수녀(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 광주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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