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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리] 예리코의 무너진 성벽을 찾아서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9-02 조회수2,976 추천수1

[성경과 문화] 예리코의 무너진 성벽을 찾아서

 

 

“사제들이 뿔 나팔을 부니 백성이 함성을 질렀다. 백성은 뿔 나팔 소리를 듣자마자 큰 함성을 질렀다. 그때에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여호 6,20).

 

예리코의 무너진 성벽을 확인하려고 근대의 수많은 고고학자들이 요르단 강변의 조그만 오아시스 ‘예리코’를 찾았다. 비잔틴 시대 이래로 성지를 방문했던 순례자들은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걸어서 다섯 시간 거리에 있는 예리코를 방문하여 엘리사의 샘에서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자캐오의 돌무화과나무 그늘 아래서 그리스도의 자비를 떠올리곤 했다. 성서고고학 발굴사에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유적지는 예리코인데, 기적처럼 무너졌다는 성벽 때문일 것이다.

 

 

찰스 워렌의 발굴(1868년)

 

예루살렘 탐사의 임무를 띠고 팔레스타인에 파견된 영국 공병대 장교 찰스 워렌(Charles Warren)은 1868년 4월 예리코를 방문했다. 그는 인부 175명을 이끌고 예리코로 여겨지는 ‘텔 에 술탄’의 한 유적지 언덕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약 한 달 동안 그는 텔의 바닥까지 도달하는 수직갱 여섯 개와 텔의 동서 방향으로 참호 세 개를 팠다. 하지만 흙벽돌 건물의 흔적만 밝혀졌을 뿐 이렇다 할 여호수아의 성벽은 찾을 수 없었다. 당시에는 이집트 신전이나 그리스-로마 신전 등 돌로 만든 건축물만 가치 있는 유적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는 예리코 발굴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워렌은 예리코 언덕을 단순히 고대 성채의 받침대 정도로만 여겼다. 나중에 케년의 발굴을 통해 워렌이 판 수직갱은 초기 청동기 시대에 건설된 흙벽돌 성벽을 관통했고, 1만 년 전에 건설된 신석기 시대의 성벽과 망대를 1미터 정도 벗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젤린과 바찡어의 발굴(1907-1909, 1911년)

 

예리코에 대한 두 번째 발굴은 1907년부터 1911년까지 오스트리아 비엔나 학술원의 후원하에 젤린(E. Sellin)과 바찡어(C. Watzinger)에 의해 시행되었다. 젤린은 이미 1899년에 예리코를 방문하여 30년 전 찰스 워렌이 파 놓은 발굴 구역을 조사한 다음, 구덩이의 깊이가 충분치 않고 너무 성급하게 발굴을 마무리했다고 평가했다. 젤린은 예리코 발굴에서 파괴된 성벽의 잔해를 발견했고, 이 사건은 한때 ‘여호수아가 무너뜨린 성벽’이라는 소문과 함께 관심을 증폭시켰다. 젤린은 언덕의 정상 부분에서 폭 9미터짜리 도랑을 발굴했고, 예리코가 여러 겹의 주거층(stratum)으로 형성되었음을 밝혔다. 그는 발굴된 여러 시대의 성벽을 크게 세 종류로 구분했다. 그런 다음 ‘솔로몬 통치 제4년이 이집트 탈출 후 480년이 지난 해’(1열왕 6,1)라는 성구를 기준으로 여호수아 시대의 성벽이 기원전 1500년경에 파괴되었다고 보았다. 하지만 독일의 바찡어는 예리코에서 발굴한 토기들을 팔레스타인의 다른 지역의 것과 비교한 결과, 문제의 성벽이 여호수아 시대보다 훨씬 전의 것이라고 발표했다.

 

* 김성 님은 협성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이자 같은 대학 성서고고학 박물관장으로, 성서고고학과 성서지리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09년 8월호, 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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