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그때 그 자리]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곳은 “세례자라고 불린 … 요한은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는 유다인들에게 서로 의롭게 대하고 하느님께 충실하여 덕행을 쌓은 다음, 세례를 받도록 일렀다. 그가 인정하는 [물로] 씻음은 일부 죄[만]을 용서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혼이 의로움으로 이미 철저하게 정화된 뒤에 몸의 정화를 위하여 세례를 받는 경우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요한 주변에 모여들었고, 그의 말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또는 기뻐하였다]”(요세푸스, <유다 고대사> 18권 5장 2).2004년 8월 17일 <뉴욕타임즈>는 세례자 요한이 초기 개종자들에게(후에 그리스도인이라 불린) 세례를 주었다고 여겨지는, 못이 있는 동굴이 발견된 소식을 크게 다루었다. 고고학자 시몬 깁손이 세례자 요한의 고향이라 불리는 ‘아인 카렘’ 근처에서 기원전 6세기부터 비잔틴 시대(324-628년)까지 사용된 한 동굴을 발견하였다. 사람이 섬세하게 개조한 이 자연 동굴에는 물을 끌어들이는 도수로와 작은 못이 있었고, 손으로 긁어서 새긴 스케치가 몇 점 있었다. 시몬은 그 스케치가 세례자 요한과 십자가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여 거기서 세례자 요한이 세례를 베풀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동안 세례자 요한의 활동지로 소개된 곳이 여덟 군데나 되었기 때문이다. 요한의 활동 지역을 찾아라 당대에 세례자 요한은 매우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활동에 대한 기록은 요세푸스의 글과 복음서 내용뿐이다. 요세푸스는 갈릴래아와 페레아의 영주였던 헤로데 안티파스가 요한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우려하여 그를 잡아 마캐로스 요새에서 죽였다고 적었다. 이는 그가 헤로데 영토 안에서 또는 그 근처에서 활동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복음서는 어떠한가? 마태오, 마르코, 루카 등 공관복음서에서 세례자 요한에 관한 기사는 제법 풍부하다. 그렇지만 그가 활동한 지역, 곧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곳을 자세히 밝히지 않는다. 마태오는 세례자 요한이 “유다 광야”(마태 3,1)에서 회개를 선포하였고 “요르단”(마태 3,13)에서 세례를 주었다고 소개한다(마르 1,9 참조). 루카는 이것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또 마태오와 마르코는 온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았다고 하여, 그곳이 예루살렘 동쪽 유다 광야에 인접한 요르단 강 근처라고 막연히 언급한다. 요한 복음서가 밝히는 베타니아의 위치는? 요한 복음서에는 세례자 요한에 관한 내용이 더욱 풍성하다. 여기에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곳을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요한 1,28), “살림에 가까운 애논”(요한 3,23)이라고 명확히 밝힌다. 베타니아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머무르실 때 거주하셨던 올리브 산 동편의 베타니아 마을과 다른 곳이다. 그것은 ‘벳 아나니야’(아나니야의 집)의 준말, 또는 ‘벳 아니야’(bet-aniyyah: 집-증거, 증언, 응답)에서 나온 말로 본다. 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성전 봉헌 축제를 지내실 때 사람들이 당신을 잡으려 하자, 그들을 피해 “요르단 강 건너편 전에 요한이 세례를 주던 곳으로”(요한 10,40) 피해 가서 머무르셨다. 그렇다면 그곳은 어디에 있는가? 견해는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요르단 강 북쪽이라는 견해다. 주된 근거는 요한 복음서이다. 요한의 제자인 베드로와 안드레아는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가 그분의 제자가 된다. 그 두 사람과 예수님께서 부르신 필립보는 모두 갈릴래아 호수 동북쪽에 있는 벳사이다 출신이다(요한 1,44 참조). 또 필립보가 초대한 나타나엘은 갈릴래아의 카나 출신이다(요한 21,2 참조). 그들의 출신 지역과 활동 범위를 볼 때 갈릴래아에 가까운 북쪽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또 예수님께서 라자로가 앓는다는 소식을 들으신 곳이 세례 터 베타니아였다. 그분께서 그 소식을 듣고도 이틀을 더 머무르신 뒤에 가서 보시니 라자로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다(요한 11,6.17 참조). 그렇다면 적어도 이삼일이 걸렸다는 뜻인데, 이를 받아들이면 요르단 강 남쪽보다 북쪽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믿을 만하다. [성서와 함께, 2010년 3월호, 이용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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