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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리] 베드로의 고향 어촌 벳사이다는 왕도였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9-02 조회수3,464 추천수1

[복음의 그때 그 자리] 베드로의 고향 어촌 벳사이다는 왕도였다

 

 

“그들은 그곳(카파르나움)에서 베드로와 안드레아의 도시 벳사이다로 갔다. 그곳에 지금 성당이 하나 있는데, 그 자리는 그들의 집이 원래 서 있던 곳이다”(725년, 수도승 빌리발두스의 순례기에서).그들이 정말 벳사이다를 갔을까? 오늘날 학자들은 그들이 카파르나움을 벳사이다로 착각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카파르나움에 대한 그들의 기록이 현재와 많이 다르고, 이미 폐허가 된 두 마을의 위치를 알기 어려우며, 벳사이다에서 교회 유적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루카 복음서에 따르면,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에게서 요한의 처형 사실을 들은 예수님께서는(마태 14,12-13 참조) 당신을 잡으려고 하는 헤로데 안티파스의 위험한 손길을 피하여 벳사이다로 물러가셨다(루카 9,10 참조). 벳사이다는 요르단 강 동편에 있어 헤로데 필리포스의 영토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그곳 근처 언덕에서 굶주린 군중을 말씀과 음식으로 배불리시어, 죽이는 임금과 달리 생명의 주님임을 드러내셨다(루카 9,11-17; 요한 6,1-14 참조). 두 번에 걸쳐 빵의 기적을 전하는 마태오 복음서와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첫 번째 기적이 타브가에서, 두 번째 기적이 벳사이다 근처 광야에서 행해졌다고 전한다(마태 15,32-39; 마르 8,1-10 참조).

 

 

엣 텔인가, 엘 아라즈인가

 

요르단 강 주변은 동아프리카에 이르는 시리아-아프리카 지구대의 일부이다. 그곳은 지질상 지각 작용이 활발하여 세월의 변형을 크게 받는다. 벳사이다 역시 그 운명을 비켜가지 못했다. 지진과 홍수 등으로 마을은 폐허가 되어 잊혀졌다. 오늘날 학자들이 벳사이다로 추정하는 곳은 두 군데다. 하나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북쪽으로 약 2km, 요르단 강에서 400m 떨어진 ‘엣 텔’(et Tell, 텔은 ‘언덕’이란 뜻의 아랍어)이다. 1838년 미국인 학자 에드워드 로빈슨이 그곳을 벳사이다로 처음 거론하였다. 한편 1870년대 그곳을 방문한 독일인 학자 코틀리브 슈마허는 엣 텔이 호수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벳사이다로 볼 수 없으며, 호수로 흘러드는 요르단 강 어귀에서 몇 백 미터 떨어진 ‘엘 아라즈(el Araj)’를 벳사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성서와 함께, 2010년 7월호, 이용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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