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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6: 성년기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1-02-21 조회수3,732 추천수1

[동녘에서 서녘까지,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 (6) 성년기


첫째 가는 죄인,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르심 받다

 

 

작가노트 : 바오로 사도는 위대한 교부들을 만들어낸 사막에서 3년동안 사색의 시간을 보낸다. 사막으로 떠나는 바오로 사도의 출발은 정신의 사막에 빛을 비추는 마음의 결연함 일 것이다. 스테파노 사건과 예수님 지체인 교회를 박해한 사건은 바오로 사도를 평생 따라다닌 멍에였다. 그의 아픔과 비탄의 눈물이 됐던 두 개의 가시는 언제나 그를 괴롭혔다. 사도의 열정 속에 숨겨진 아픔을 재구성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박해자 사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날부터 그의 삶이 변화됐기에 '다마스쿠스의 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으로의 올바른 변화와 동의어가 됐다. 교회사나 순교사는 그리스도인들을 적대하거나 고문했던 수많은 핍박자들이 주님의 빛을 경험한 후 그리스도에 대한 자기들의 믿음을 공언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은 순교까지 했음을 보여 준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

 

'다마스쿠스의 길'은 모두에게, 심지어 범죄자에게나 가장 타락하고 방탕한 자에게조차 포기하지 않고 열려 있다. 다마스쿠스의 길에 나타나 사울을 구원했듯이,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가장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 삶에 들어온다.

 

다마스쿠스로 인도하는 그 길을 우리도 뒤따라 가보자. 성 가까이에 다가섰을 때, 성을 가로지르는 큰 강으로부터 수정 같은 물을 공급받는 다마스쿠스의 초원(Ghoufa)이 눈앞에 펼쳐져 있음을 보게 된다. 야자수와 사과나무, 도금양(늘푸른 떨기나무) 같은 탐스러운 유실수들이 성곽을 둘러싸고 있다.

 

다마스쿠스는 해발 690m에 자리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다. 구약성경 창세기는 그 도시를 아브라함 시대에도 있었다고 말한다(창세 14~15장 참조). 그러나 요셉은 다마스쿠스는 아람의 아들이며 샘의 손자인 우스(창세 10,23)에 의해 세워졌다고 기록한다. 고대 아랍 시인들은 다마스쿠스를 '동방 세계의 눈'으로, '사막의 진주'로 부른다.

 

아랍 전통에 따르면, 마호메트는 다마스쿠스를 천국으로 지칭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천국은 한 곳뿐이다. 다마스쿠스에서 살아 보면, 지상의 다른 어느 곳에 가도 이 같은 천국을 발견하지 못한다."

 

 

사울을 찌른 두 가시

 

다마스쿠스의 성문으로 들어가 보자. 그 문을 통해 바오로가 성으로 들어갔으므로 그때부터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우리는 옛날의 '곧은 길'로 향하기로 하자. 그곳에는 사울이 기거했던 유다의 집이 있고, 그곳은 후에 그리스도 성전이 세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늘날 이 자리에는 이슬람 사원인 자미(Jami)가 들어서 있다. 이곳으로 그리스도 사도 하나니아스가 사울을 찾아왔다. 하나니아스와 사울이 얼마 동안 함께 보냈는지, 그리고 하나니아스가 주님 편에서 사울에게 정확히 무엇을 드러내 보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사울이 홀로 주님과 함께 있을 때 사울 입장이 돼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맨 처음 그를 전율시킨 것은 자기 자신이 조금 전까지 핍박했고, 감옥에 가뒀고, 사형에 처했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실은 무죄하고 칭송받을 만한 사람들이라는 점이었을 것이다. 돌팔매에 상처투성이가 돼도, 자신을 죽인 자들에게 죄를 돌리지 말도록 주님께 간구할 힘을 가졌던 스테파노의 빛나는 얼굴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자신의 죽음에 동참했던 바로 그 사울을 위해서도 스테파노는 기도했던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행동이 하느님 권위와 율법을 수호한다고 생각했던 사울의 마음은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는 것 같았을 것이다.

 

그를 찌른 또 다른 가시는 더 날카로웠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그것이다. '네가 나를 믿는 자들을 핍박했을 때 그것은 그 사람들만 핍박한 것이 아니라 나도 핍박한 것이다. 나를 믿는 사람들은 곧 나의 지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사울은 주님이 그에게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하고 말씀했던 이유를 깨닫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울은 예수님을 만나 본 적이 없고, 그의 동료들이 그를 붙잡아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에도 예루살렘에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결코 예수님 박해에 가담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가 주님의 지체인 교회를 핍박했기에 주님을 핍박한 것이 됐다. 사도 바오로는 마음속에 박혀 있는 그 두 개의 가시를 결코 제거할 수 없었다.

 

 

죄인이라 고백

 

그는 자기 서간들에서 여러 번 그 사실을 언급했다.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며 아예 없애 버리려고 하였습니다"(갈라 1,13). "나는 전에 그분을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1티모 1,13).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1코린 15,9).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1티모 1,15).

 

생애 마지막까지 그가 이처럼 느끼고 공공연하게 고백한 것을 보면, 수많은 아픔과 비탄의 뜨거운 눈물로 주님 사도 하나니아스 앞에서도 그러한 고백을 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하나니아스는 다마스쿠스의 1대 주교가 됐다고 전해진다).

 

단지 그뿐만이 아니다. 그때까지 그의 삶 속에서 자라 온 정신이 뿌리째 뽑히고, 삶의 새로운 원칙들을 그 안에 심어야 했을 때, 그러한 거듭남은 시간과 마음의 진정과 신중함, 과거 잘못된 믿음의 반성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이후 바오로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생각을 포로로 잡아 그리스도께 순종시킵니다"(2코린 10,5). 그리고 마침내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2코린 5,17)고 말했다. 그 모든 것 안에서 "새 인간"(에페 4,24)이 나온 것이다.

 

정신의 사막에서 이 같은 신중함의 필요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1,17)에 적힌 것처럼, 당연히 바오로를 아라비아로 향하도록 떠밀었을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아라비아를 둘로 나눴다. 잘 알려진 아라비아 반도와 다마스쿠스 외곽에서 유프라테스 강에 이르는 암석으로 된 아라비아로 나뉜다. 거기에는 나바티아 왕국이 있고 그들의 왕인 아레타스는 헤로데 안티파스와 원수 사이였다. 그러므로 바오로가 그곳으로 와서 변했다는 것을 알고, 그에 대적해 일어났던 유다인들에게 더 이상 고난을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큰 사건들 이후 바오로 사도는 주님 사도 하나니아스가 가르친 것들을 마음에 새기고, 가는 곳마다 항상 성경책을 지닌 채 풀 한 포기 없는 고지대 사막으로 향했다. 사막은 늘 위대한 예언자들과 성 대바실리오,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그리고 또 다른 많은 교회의 위대한 교부들을 키워 낸 곳이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

 

여기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으로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로마 1,1) 바오로는 주님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성경의 바리사이식 해석을 재검토하고 개정했을 것이다. 율법 학자들의 율법을 하느님 뜻과는 무관한 사람들의 주문서로 배제했을 것이다. 모세 율법의 계명들의 외양만을 지키는 것은 구원은커녕, 인간의 몸을 취한 하느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너그러운 사랑을 보증하지 못함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훗날 우리 구원을 위해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갈라 5,6)하고 썼다.

 

아라비아 사막에서 보낸 3년 동안의 사색을 통해 바오로는 주님의 인도자로서, 세계 만방을 그리스도께 이끈 사도로서 그 빛나는 업적의 진지를 구축한다.

 

[평화신문, 2011년 2월 20일, 글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 그림 정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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