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함께 걷는다 : 민수기 - 나팔을 불어라 “자네는 이미 하늘 나라의 영적 진영의 병적에 등록되어 있으니, 그 규율을 손상시키지 말고 종교적인 덕행으로 절도 있게 준수해야 하네. 항구하게 기도하며 영적 독서를 하고, 지금 하느님과 함께 대화하게. 그러면 하느님께서 자네와 함께 계실 걸세. … 가짜인 것은 무엇이나 무너지게 마련이고, 참다운 소유가 아닌 것은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에게 확실한 안전을 주지 못하네. 그러나 우리의 집은 항상 생동감 있는 아름다움과 완전한 영예와 지속되는 찬란함을 지니고 있지. 이 집을 부수거나 없애 버릴 수 없고, 육체가 (부활하여) 되돌아올 때에는 더욱 훌륭하게 꾸며질 걸세”(교부 문헌 총서1, 《치쁘리아누스-도나뚜스에게》, 15항, 분도출판사). 1,45 이렇게 이스라엘에서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스무 살 이상 된 사람으로서 집안별로 사열을 받은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의 수는, 46 곧 사열을 받은 이들의 총수는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었다. 민수기의 그리스어 성경은 히브리 성경의 명칭인 ‘브미드바르(광야에서)’라고 하지 않고, 숫자를 가리키는 ‘아리트모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민수기에 숫자가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즉 인구 조사(1장; 26장 참조), 레위 집단의 수(3,14-51 참조), 봉헌 예물의 수(7,10-83; 28-29장 참조), 전리품의 수(31,32-52 참조) 등 숫자에 대한 보고가 많이 나옵니다. 민수 1,1-10,10은 하느님께서 나타나 율법을 주셨던 시나이 산에 계속 머물면서 출발을 준비하는 부분인데, 주님의 명령에 따라 수행된 첫 번째 인구 조사(민수1,20-46 참조)는 이스라엘의 병력을 평가하기 위한 것입니다. 스무 살 이상의 남자만 총 603,550명이라고 하지만(탈출 38,26 참조), 이는 실제 수로 보기는 어려우며 어디에 근거하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은 각기 수의 의미도 갖고 있어 ‘이스라엘 아들’과 ‘1000’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의 숫자들을 더하고 곱해서 그 수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어 주겠다(창세 12장 참조)고 하신 하느님의 약속이 실현되어 광야에서 강한 민족이 되었음을 강조하는 데 있습니다. 시나이 광야는 먹을 것도 없고 살기도 힘든 곳이지만, 하느님의 강복으로 후손이 번창하여 민족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의 수가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신앙 고백으로 하느님께서 지금까지 해 주신 것 같이 앞으로도 당신 백성과 언제나 함께 계시고 그들을 보호하시어 땅에 대한 약속을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는 믿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신 일에 대한 기억은 미래를 강복의 역사로 열어 가는 지혜이고 희망입니다. 이제 그들은 늘 자기들과 함께 계시면서 이끌어 주셨던 하느님에 대한 신뢰를 새롭게 다지며, 곧 떠나야 할 시나이 광야 여정을 용기 있게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2,1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셨다. 2 “이스라엘 자손들은 저마다 제 집안의 표지로 세운 깃발 아래 진을 쳐야 한다. 만남의 천막에서 조금 떨어져 그 둘레에 진을 쳐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만남의 천막(성막)을 백성의 진영 한가운데 설치하라고 명하십니다(민수 2,2.17 참조).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성막 둘레에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세 지파씩 천막을 칩니다. 동쪽에서 시작해 돌아가며 진을 치는데, 동쪽은 유다, 이사카르, 즈불룬 지파, 남쪽은 르우벤, 시메온, 가드 지파, 서쪽은 에프라임, 므나쎄, 벤야민 지파, 북쪽은 단, 아세르, 납탈리 지파가 진을 칩니다. 민수기에서는 창세 49장(야곱이 열두 아들을 축복하는 이야기)과 달리 하느님의 명에 따라 레위 지파가 빠지고, 그들 대신 요셉 지파에서 요셉의 두 아들 에프라임과 므나쎄가 두 지파로 분리되었습니다(민수 1,10 참조). 레위인들은 병역이 면제되고(민수 1,49 참조) 성막을 지키기 위해 성막 둘레에 진을 치라고 합니다(민수 1,53 참조). 이집트를 떠나올 때 이스라엘은 오합지졸이었으나, 시나이 산에 머물며 광야 여행을 위해 마무리 준비를 하면서 매우 조직화되고 체계가 잡힌 민족 공동체의 모습을 보입니다. 열두 지파가 만남의 천막을 중심으로 배열된 현재의 모습은 이스라엘이 예배 공동체임을 확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장차 그들이 가나안에 정착하여 더 큰 공동체를 이룰 때 이러한 특성을 이념으로 삼고 공동체 제도의 근거로 삼습니다. 성막은 모세와 백성이 하느님의 뜻이나 가르침을 듣는 장소입니다. “모세는 주님과 말씀을 나누려고 만남의 천막 안으로 들어가면, 두 커룹 사이에 있는 증언 궤에 놓인 속죄판 위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소리를 듣곤 하였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모세에게 이르셨다”(민수 7,89; 11,16-17 참조). 성막이 백성의 진영 한가운데 위치하는 것은 백성의 삶이 성막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가운데 장막을 치고 언제나 그들 안에 현존하시며 백성을 친히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막 안 지성소에 모셔진 계약 궤(증언 궤)는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며, 거기에는 모세가 하느님께 받은 십계명 돌 판 두 개가 모셔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사회 종교 생활의 규범이 되는 십계명과 하느님 말씀을 중심으로 하느님 백성의 삶이 영위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토라와 십계명은 단순히 법이 아니라 하느님의 가르침이며 길입니다. 토라의 근본이 되는 십계명(신명 5장; 탈출 20장 참조)을 지키면 이집트 탈출로 받은 자유와 해방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은 자유와 해방의 길이며, 언제 어디서나 재현될 수 있는 구원의 길입니다. 3,11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12 “나는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태를 맨 먼저 열고 나온 모든 맏아들 대신, 레위인들을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골라 갖는다. 레위인들은 나의 것이 된다.” 레위인들을 맏아들 대신 ‘당신 것’으로 선택하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의지에 근거하여 레위인들은 온전히 하느님께만 속하게 됩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파스카 밤에 이집트의 모든 맏아들과 맏배가 죽는 재앙 속에서 이스라엘의 맏아들과 맏배는 하느님의 보호를 받아 구원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 해방을 기억하며 모든 맏아들과 맏배를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봉헌하는데(탈출 13,12 참조), 맏아들의 경우 특별히 인신 제사를 바치는 일이 없도록 대속代贖하였습니다. “너희 자식들 가운데 맏아들은 모두 대속해야 한다”(탈출 13,13; 민수 18,15 참조). 이러한 대속의 의미에서 원래 하느님의 것인 이스라엘의 맏아들 대신 레위인들이 하느님의 소유가 됩니다. 따라서 경신례를 위해 축성되어(민수 3,6.9; 18,6 참조) 만남의 천막에서 아론과 공동체를 위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성서와함께, 2010년 7월호, 서효경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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