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함께 걷는다 : 판관기 - 깨어나라, 깨어나라 오늘을 사는 우리는 지금이 어느 때보다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폭설을 치우는 일을 ‘눈과의 전쟁’이라고 표현하듯, 어떤 사건을 보도하면서 서슴없이 ‘전쟁’이라는 단어와 연결시킵니다. 매스컴을 통한 언어폭력은 현대인을 불안과 불신의 분위기로 쉽게 몰아갑니다. 바로 세상의 어둠 속에서 신앙의 빛을 향해 걸어가야 하는 신앙인의 소명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판관기는 기원전 1200-1025년경의 가나안 정복과 왕정 제도 수립 사이에 일어난 갖가지 혼란스러운 사건을 숨김없이 소개합니다. ‘실패의 책’이라 일컫는 이 책에는 불안하고 불순종한 백성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나 판관기는 그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돌보시는 하느님을 체험하도록 인도합니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열두 판관 중에 드보라와 기드온을 만나 보겠습니다. 5,12 “깨어나라, 깨어나라, 드보라야. 깨어나라, 깨어나라, 노래를 불러라.” 거룩한 땅 이스라엘 북쪽에 자리 잡은 히브리 민족은 여러 지역으로 분포된 가나안 원주민의 힘에 눌려 지내고 있었습니다. 작은 나라들 가운데 하나인 하초르가 당시 갈릴래아 지역에 거주하던 이스라엘인을 억압하였습니다. 그때 하초르의 임금 야빈은 이스라엘인을 쉽게 항복시킬 수 있으리라 확신하며, 철 병거로 무장한 자기 부대를 시스라 총사령관의 손에 맡깁니다. 이에 맞설 이스라엘 군대는 바락이라는 사람의 지휘 아래 있었는데, 신통치 않은 보병대로 구성되어 형편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드보라라는 여자 예언자가 무대에 등장합니다. 이 여인은 타보르 산 종려나무 밑에서 신탁을 전하곤 하였습니다. 타보르 산은 나중에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신 장소라고 전해집니다(마태 17,1-8; 마르 9,2-8; 루카 9,28-36 참조). 히브리어로 ‘벌’을 뜻하는 드보라의 영웅다운 행적은 성경에 두 번에 걸쳐 서술되고 있는데, 판관 4장에서는 산문 형식으로, 5장에는 아름다운 찬가로 소개됩니다. 드보라의 노래는 가장 오래된 히브리 고대 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통치자였던 무능한 ‘판관’ 삼가르와 주저하는 바락 앞에서, 드보라는 히브리 민족의 해방자이신 주님의 도움을 잊지 않고, 자유를 위한 전쟁을 선언하며 이스라엘인을 모아 군대를 일으킵니다. 이때 전쟁의 함성이 리듬을 타며 힘차게 되풀이됩니다. “깨어나라, 깨어나라, 드보라야. 깨어나라, 깨어나라, 노래를 불러라”(판관 5,12). 성경에는 시스라 부대와 드보라와 바락이 이끄는 부대의 격전이 자세히 묘사되지 않고 그 결과만 우렁차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전투는 키손천이 흐르는 평야에서 벌어지는데, 갑자기 사나운 폭풍우가 밀어닥치고 키손천이 넘쳐 평야를 휩쓸어 버립니다. 자연 현상이 하초르의 철 병거에 재앙이 되었습니다. 철 병거는 물로 뒤덮인 땅 위에서 온통 흙투성이가 된 채, 바퀴는 겉돌고, 말들은 헛되이 말굽을 들어 올릴 뿐이었습니다. 결국 병사들은 도망치기에 바빴고, 시스라 장군도 유목민 천막으로 몸을 숨길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 천막에서 또 다른 여인, 야엘이 등장합니다. 야엘은 히브리어로 ‘산 염소’를 뜻하여 유목과 목축 문화와 관련된 이름입니다. 시스라 장군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오랫동안 이스라엘인과 적대 관계에 있던 카인족의 유목민 천막으로 갔습니다. 자기네 임금과 카인족이 평화롭게 지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카인족 헤베르의 아내인 야엘은 약한 편, 곧 이스라엘 사람들 편에 서기로 하였습니다. 약자였던 이스라엘이 지금은 반대로 승자의 위치에 있지만요. 야엘은 시스라 장군에게 물과 엉긴 젖을 주어 갈증을 풀어 주고 원기를 회복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가 잠들도록 합니다. 드보라는 야엘의 무시무시한 행위를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손을 뻗어 말뚝을 잡고 왼손에는 일꾼들의 장도리를 쥐고서 시스라를 쳐 머리를 부수고 관자놀이를 뚫어 쪼개 버렸네. 야엘의 발 앞에 주저앉은 시스라 쓰러져 드러누웠네. 야엘의 발 앞에 주저앉더니 쓰러졌다네. 주저앉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네”(판관 5,26-27). 여기에서 세 가지 동사가 시스라의 비참한 최후를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곧, ‘주저앉다’, ‘쓰러지다’, ‘드러눕다’입니다. 이 세 가지 동사의 반복은 이스라엘의 모든 원수가 몰락한다는 것을 상징하면서, 시스라 장군의 무너짐을 점차 확장시켜 묘사합니다. 한편 이스라엘 부대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전투 상황에 따라 재빨리 돌진하여 승리를 쟁취합니다. 우리는 승리의 마당에서 드보라뿐 아니라 진정한 승리자이며 억압받는 자들의 보호자이신 주님을 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우주적 무기, 곧 폭풍우와 물로 적들을 무찌르신 것입니다. 드보라의 찬가는 마리아의 찬가와 본질상 다르기도 하지만, 전쟁사에서 용감한 여전사를 칭송한 ‘강력한 동정녀(라틴어 Virgo potens)의 노래’라 볼 수 있겠습니다. “임금들이 모여 와 싸웠네. … 하늘에서는 별들도 싸웠네. 자기들의 궤도에서 시스라와 싸웠네. 키손천이 그들을 휩쓸어 가 버렸네. 태고의 개천, 키손천이. - 내 영혼아, 힘차게 나아가라 -”(판관 5,19-21). [성서와함께, 2011년 4월호, 김연희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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