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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판관기: 제 손에 넘겨만 주신다면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26 조회수3,273 추천수1

말씀과 함께 걷는다 : 판관기 - 제 손에 넘겨만 주신다면

 

 

심 봉사는 물에 빠진 자신을 구해 준 스님에게서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래서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하겠다고 약속하고 집에 돌아와 후회합니다. 효성이 지극하고 행실이 바른 처녀로 자라난 심청은 공양미의 대가로 중국 뱃사람들에게 제물로 팔려갑니다. “참말이냐, 참말이냐. 애고 애고 이게 웬 말인고. 못 가리라, 못 가리라. 네 날 다려 묻지도 않고 네 임의로 한단 말가.” 판소리 ‘심청가’에서 심 봉사는 딸이 자기 눈을 뜨게 하려고 인당수로 몸을 팔러간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대성통곡합니다. “자식 죽여 눈을 뜬들 그게 차마 할 일이냐”고 가슴을 칩니다. 판관 입타는 암몬 자손과의 싸움에서 “제 손에 넘겨만 주신다면…”이라고 주님께 조건부 서원을 하였습니다. 이어지는 입타와 그의 딸에 관한 애절한 이야기를 읽으니 오래전에 감상했던 어떤 명창의 심청가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9,7 “스켐의 지주들이여, 내 말을 들으시오. 그래야 하느님께서도 그대들의 말을 들어 주실 것이오.”

 

오늘날에도 사마리아 신자 무리가 파스카 축제를 지내기 위해 ‘그리짐’이라고 불리는 산(해발 880m)에 올라, 그 꼭대기에서 마지막 때에 자기들의 메시아인 ‘부흥자’ 타헵이 나타나기를 기다립니다.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요한 4장 참조)에서 언급되는 ‘예배드리는 산’, 이스라엘의 유명한 판관인 기드온의 아들로 요탐이라는 이름을 지닌 이스라엘 사람이 그리짐 산 꼭대기에 서서, 그 아래 위치한 스켐의 지주들을 불러 모으고 비유 하나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그들이 자기 이복형제인 아비멜렉에 반대하고, 자기편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일흔 명이나 되는 형제들을 한 바위 위에서 살해하고 스켐을 다스리는 임금으로 스스로 왕좌에 앉은 자입니다. 그때 막내 요탐만이 유일한 생존자가 됩니다.

 

요탐의 비유는 판관 9,8-15에 나오는데, 이 비유로 인해 다윗 임금이 나타나기 한참 전에 약속의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의 초기 시대 지방 왕권에 대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 시대에는 왕정 제도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데, 이 비유는 이스라엘 지혜문학의 가장 오래된 본보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실 이 비유는 우화와 비슷합니다. 비유 안에 말하는 나무들이 나오기 때문이지요(우화에서는 보통 동물이 말함).

 

이제 그리짐 산 꼭대기에서 요탐이 이렇게 말합니다. 어느 날, 나무들이 모여서 자기들의 임금을 선출합니다. 첫 번째 후보는 예상된 것입니다. 지중해 지역의 아주 유용한 나무인 올리브 나무를 찾아간 것이 최고의 선택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놀랍게도 올리브 나무는 그 청을 간단하게 거절합니다. “신들과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하는 이 풍성한 기름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판관 9,9) 두 번째 후보는 맛있는 과일을 내주며 번영과 평화를 상징하는 무화과나무입니다. 성경은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기를 ‘모든 사람이 무화과나무 아래 그늘에서 살고 있었다’(1열왕 5,5 참조)고 표현하지요. 그러나 무화과나무도 나무들의 청을 수락하지 않고 거절합니다. “이 달콤한 것 이 맛있는 과일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판관 9,11) 세 번째 후보 역시 예상되었던 후보입니다.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문장紋章이라고 할 만하지요. 그러나 포도나무도 청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신들과 사람들을 흥겹게 해 주는 이 포도주를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판관 9,13)

 

나무들이 권력을 ‘흔들거리다’는 말로 표현한 것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바람의 횡포와 비슷한 일종의 광기로 정의한 것입니다. 이런 사태 앞에서 당황한 나무들은 이제 딱딱하고 마른 가시가 있는 나무, 자기가 자라기 위해 항상 다른 나무들을 악용하는 기생 식물에게 향합니다. 그가 하는 말은 권력의 남용과 오만의 본보기라 하겠습니다. “너희가 진실로 나에게 기름을 부어 나를 너희 임금으로 세우려 한다면 와서 내 그늘 아래에 몸을 피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이 가시나무에서 불이 터져 나가 레바논의 향백나무들을 삼켜 버리리라”(판관 9,15). 키가 작으면서도 고압적이고, 열매를 내지 않으면서 불로 다른 나무를 죽일 능력을 갖추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것이 바로 권력이지요.

 

요탐은 전제 군주인 형 아비멜렉을 피하여 멀리 도망가 살아야 했습니다. 결국 요탐의 저주는 그대로 이루어져 아비멜렉은 어느 전투에서 처참하게 죽습니다. 요탐이 주는 교훈이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이스라엘의 참 임금은 하느님뿐이시다’는 결론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며 이는 왕정 제도에 대한 격렬한 적대감을 드러냅니다.

 

[성서와함께, 2011년 5월호, 김연희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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