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함께 걷는다 : 사무엘기 - 우리 가운데 오시어 꿈처럼 여겼던 일이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초고속화로 치닫는 첨단 기술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합니다. 그 가운데 이동통신의 발달은 넓고도 먼 세상을 바로 눈앞에 옮겨 놓았습니다. 새로운 네트워크 환경은 터치 한 번에 나라와 국경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실시간으로 연결합니다. 이렇게 소통과 친교의 기회가 더 빠르고 쉬워졌지만 열린 시공간에서도 디지털 소외 현상을 마주합니다. 우리와 하느님의 네트워크는 항상 잘 연결되어 있는지 성찰해 보며, 이동 성소인 ‘계약 궤’를 통해 주님의 현존을 언제 어디서나 느끼면서 힘을 받고자 했던 성경 속의 옛 사람들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6,2 필리스티아인들은 사제들과 점쟁이들을 불러 놓고 물었다. “주님의 궤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그 궤를 제자리로 돌려보낼 수 있는지 알려 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 가운데에 현존하면서 그들을 보호해 주시겠다고 시나이 산에서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계약은 이스라엘이 존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바탕입니다. 그 계약을 증언하는 십계명 판을 보관하는 궤가 무엇보다 강력하게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냅니다. 궤는 ‘주님의 계약 궤’, ‘하느님의 계약 궤’, ‘주님의 궤’, ‘하느님의 궤’,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궤’, ‘증언 궤’, ‘거룩한 궤’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계약 궤와 관련된 명칭이 많다는 사실은 성경에 담긴 전통이 여럿이며 성경의 역사에서 이 궤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계약 궤는 약속의 땅을 향해 광야를 행진하는 이스라엘의 이동 성소인 성막聖幕의 중심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를 행군하면서 ‘만남의 천막’도 함께 옮겨 갑니다. 계약 궤가 행렬의 맨 앞을 서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들고 출발할 때마다 모세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일어나소서. 당신의 원수들은 흩어지고 당신을 미워하는 자들은 당신 앞에서 도망치게 하소서”(민수 10,35). 그리고 행렬이 멈출 때에는 “주님, 돌아오소서. 이스라엘의 수만 군중에게로!”(민수 10,36) 하고 노래합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인들이 계약 궤를 주님과 거의 동일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계약 궤를 앞세워 마침내 요르단 강을 건넜고(여호 3장 참조), 예리코를 점령할 때에도 그 궤가 막중한 역할을 합니다(여호 6장 참조). 그 후 계약 궤는 잠시 언급되지 않다가 판관 시대의 끝자락, 여기 1사무 4-6장에서 ‘하느님의 궤’가 이야기의 중심 소재로 등장합니다. 계약 궤 이야기는 이스라엘과 필리스티아인들의 전쟁 발발로 갑작스럽게 시작됩니다. 필리스티아인들은 이스라엘에게 가장 끈질기고 영속적인 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궤를 신뢰하는 만큼 필리스티아인들도 그 궤를 두려워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이 첫 싸움에서 필리스티아인들에게 지자, 엘리 집안은 실로 성소에서 돌보고 있던 계약 궤를 모셔옵니다. 필리스티아인들은 이 소식을 듣고 “우리는 망했다! 누가 저 강력한 신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겠는가? 저 신은 광야에서 갖가지 재앙으로 이집트인들을 친 신이 아니냐!”(1사무 4,8)고 한탄합니다. 그러면서도 필리스티아인들이 더욱 용기를 내어 싸우는 바람에, 이스라엘인들이 패배하고 계약 궤마저 빼앗기게 됩니다. 이 이야기의 문제는, 계약 궤를 가지고도 이스라엘이 패배한 것은 계약 궤가 없는 패배보다 더욱 당혹스럽다는 점입니다. 필리스티아인들이 계약 궤를 전리품으로 자기들의 신전에 가져다 놓자 그들에게 재앙이 잇따릅니다. 그들은 일곱 달 만에 궤를 이스라엘인들의 지역으로 돌려보냅니다. 그리하여 계약 궤는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모셔올 때까지(2사무 6장; 시편 132 참조), 이스라엘인들에게 거의 잊혀진 채 ‘키르얏 여아림’이라는 고을에 방치됩니다. 솔로몬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어, 계약 궤를 그 가장 안쪽, 곧 가장 거룩한 곳인 지성소에 모셔 놓습니다(1열왕 8,1-21 참조). 그 후 역사서에서 계약 궤가 더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하브암 제오년에 이집트의 시삭 임금이 이스라엘을 침입하였을 때에 가져가 버렸다고 추측하기도 합니다(1열왕 14,25 참조). 그러나 기원전 587년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이 예루살렘을 함락하였을 때에 성전과 함께 불에 타버렸거나 강탈당하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2마카 2,4에는,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에 예레미야 예언자가(예레 3,16-17 참조) ‘만남의 천막’과 계약 궤를 느보(?) 산의 한 동굴에 감추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계약 궤의 최후가 어떠하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유배 이후 성전을 재건할 때에 계약 궤를 다시 만들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요한 1장 로고스 찬가에서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고 노래합니다. ‘사셨다’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은 본디 ‘천막을 치셨다’를 뜻합니다. 이는 구약의 ‘만남의 천막’(성전)과 그 안에 모셔진 계약 궤를 암시합니다. 그리고 ‘말씀’ 곧 하느님의 아드님이 더는 상징이 아니라 실체로 이 세상에 하느님을 드러내신다고 밝힙니다. 우리는 이제 그 사랑과 자비를 알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오시어 내면 깊은 곳에 살아 숨 쉬는 주님께서는 찬미 받으소서! 10,1 사무엘은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을 맞춘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당신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그분의 소유인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셨소.” 사울은 수는 적지만 용맹한 벤야민 지파에 속하였으며, 예언자 사무엘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아 한 민족의 첫 번째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약속의 땅에 들어온 뒤 몇 세기 동안 지속된 부족 연방 체제에서 벗어나려고 하였습니다. 때는 기원전 1030년 무렵입니다. 성경은 사무엘이 이러한 제도 전환에 마음이 내키지 않아 하는 모습을 그려 줍니다. 성경 본문에 왕정 제도에 대한 호의적 자료와 체제 변화를 싫어하는 상반된 역사 자료들이 섞여 있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왕정 수립을 전하는 사무엘기 저자는 왕정 제도의 모호함을 굳이 숨기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주님을 임금으로 모셔 왔으니 특정한 사람을 임금으로 내세운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왕정 제도는 주님과 그분의 중개자인 사무엘이 주도하였으므로 이 제도의 도입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임금을 세워 달라고 요구하는 백성의 주장은 단죄를 받았습니다. 왕정 시대를 다루는 성경 저자들은 왕정에 대하여 긍정과 부정의 상반된 태도를 전합니다. 사무엘기에서 그 두 관점이 두드러지는데, 왕정 제도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대목은 두 곳입니다. 1사무 9,1-10,16을 보면 사무엘이 주님의 지시를 받아 키가 크고 젊고 잘생긴 사울을 임금으로 세웁니다. 또 다른 대목은 11,1-15인데, 여기에서 사울은 야베스 길앗을 암몬족에게서 구한 위대한 용사가 되어 백성의 두터운 신망을 얻습니다. 그를 임금으로 세워 달라는 백성의 요청을 받은 사무엘은 흔쾌히 “자, 길갈로 가서 왕정을 새롭게 다집시다”(1사무 11,14)고 말한 뒤, 주님 앞에서 사울을 임금으로 세웁니다. [성서와함께, 2011년 9월호, 김연희 클라라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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