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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창세기: 흙의 먼지로 빚어진 사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2-27 조회수8,318 추천수1
[구약의 세계 - 창세기를 처음 읽는데요] 흙의 먼지로 빚어진 사람


피그말리온을 아십니까? ‘피그말리온 효과’(마음속으로 믿고 행동하면 그대로 이뤄진다)로 잘 알려진 그리스 신화 속 인물입니다. 피그말리온은 지중해 키프로스 섬에 사는 젊은 조각가였습니다. 외모가 볼품없었던 그는 혼자 살기로 작정하고 조각에만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사랑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심혈을 기울여 여인상을 조각했습니다. 그는 완성된 자신의 작품이 너무나 아름다워 넋을 잃고 보다가 마침내 사랑에 빠졌습니다. 여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신 아프로디테가 그의 간절한 기도를 받아들여 여인상을 사람으로 변하게 합니다. 그런데 조각상이 사람이 되는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피그말리온이 조각상의 손등에 입을 맞추자 온기가 느껴졌고, 조각상이 점점 따뜻해져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조각상이 사람으로 변한 사건은 신화이기에 가능합니다. 현실에서는 절대 이뤄지지 않는 일입니다. 물론 진짜 사람처럼 느껴지는 조각상이 있기는 합니다. 조각가의 혼이 담긴 작품을 보면, ‘아~ 정말 사람 같다. 살아서 내게 다가올 것만 같다’고 느낍니다. 그렇다면 조각상에서 변한 짝퉁 사람이 아니라, 진짜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요? 창세기에 따르면 “하느님의 모습으로”(창세 1,27) 창조되어, “그 코에 생명의 숨”(창세 2,7)이 불어넣어진 존재입니다.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면서 숨 쉬는 나와 너, 우리가 곧 사람입니다.

어렸을 적 “엄마, 난 어떻게 태어났어?” 하고 한번쯤 물어 보았을 것입니다. 그 질문에 “응, 넌 아빠의 정자와 엄마의 난자가 만나 세포분열을 거듭하여 배아가 되었어. 배아가 두 달쯤 지나 인체 모양을 형성하여 태아가 되었고, 태아가 엄마 뱃속에서 여덟 달을 살다가 세상 밖으로 빠져나와 비로소 네가 되었지”라고 말하는 부모가 있을까요? 그렇게 설명하면 아이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엄마와 아빠가 사랑해서 네가 태어났어” 하고 대답합니다. 만약 아이가 “그럼 사람은 뭘로 만들어졌어?” 하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난감합니다. 부모가 생명공학박사라도 꼭 집어 답할 수 없습니다.

답하기 쉬운 객관식 문제를 하나 내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무엇으로 만드셨습니까?

ⓛ 돌 ② 흙 ③ 나무 ④ 진흙 ⑤ 흙의 먼지

일단 돌과 나무는 아닙니다. 흙인 것 같은데 흙과 관련된 보기가 세 개나 됩니다. 흙, 진흙, 흙의 먼지. 정답은 ‘⑤ 흙의 먼지’입니다. 가톨릭 공용 성경에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창세 2,7)라고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② 흙’도 맞고 ‘④ 진흙’도 맞습니다. 개신교 성경에는 모두 ‘흙’으로, 공동번역 성서에는 ‘진흙’으로 번역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흙과 진흙은 비슷하다고 하겠는데, 흙과 흙의 먼지는 좀 다른 것이 아닌가? 왜 흙의 먼지인가? 흙먼지와 다른 말인가?’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공동번역 창세 2,7)셨다는 표현은 이해하기 쉽습니다. 빛깔이 붉고 차진 흙으로 형태를 만드는 건 쉬운 일이니까요. 반면에 바람만 불면 날아가는 흙의 먼지로 형태를 만든다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진흙과 흙의 먼지는 천지 차이입니다. 진흙에는 물기가 있지만 흙의 먼지에는 물기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진흙과 흙의 먼지는 생각하면 할수록 비슷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셨다는 구절을 해설한 책을 보면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사람(아담adam)은 땅(아다마adamah)의 흙(가장 고운 진흙, 아파르apar)으로 만들어진다. 사람은 땅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본질상 ‘땅에 속한 존재’이다”(《보시니 참 좋았다》, 89쪽). “주 하느님(야훼 엘로힘)은 옹기를 만들듯이 가장 고운 흙의 먼지를 빚어 사람(아담)의 몸을 만드신다. 이때의 흙은 히브리어로 아다마(직역하면, ‘흙의 먼지’)라고 한다. 사람은 ‘아다마’에서 빚어졌기에 아담(사람 혹은 남자)이라 불린다. 따라서 사람은 고운 흙처럼 약하고 깨지기 쉽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하며 그를 만든 하느님께 의존하는 존재이다”(박요한 영식, 《창세기 1(1-25장)》, 55쪽). 두 책에서 ‘흙의 먼지’에 대한 풀이는 조금 다릅니다. 하나는 ‘가장 고운 진흙’이고 다른 하나는 ‘가장 고운 흙의 먼지’입니다. 점점 머리가 아파옵니다. 흙이냐 진흙이냐 흙의 먼지냐에 대한 답을 구하는 일이 왠지 의미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하느님께서 돌이나 나무 같은 단단한 물질이 아니라 손으로 짓이기면 금세 형태가 사라지고, 바람만 불면 흩어지는 ‘흙’으로 사람을 빚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분께서 얼마나 조심스럽게 흙을 만지셨을까요? 당신의 모습을 수없이 바라보며 최대한 비슷하게 사람을 빚으시고, 마침내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어 사람이 생명체가 된 것입니다. 흙이라는 육체와 생명의 숨이라는 영혼이 하나로 결합된 존재. 창세기 저자는 ‘사람이 어떻게 생겨났는가’가 아니라 ‘사람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합니다. “엄마,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라고 묻는 아이에게 “넌 엄마와 아빠가 사랑해서 태어났어”라고 대답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 짝을 이룹니다. 요새 화제를 모으고 있는 TV프로그램의 말투로 표현하자면, 인류의 첫 번째 짝은 ‘남자 1호’ 아담과 ‘여자 1호’ 하와입니다. 농담 삼아 물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남자 몇 호이며, 여자 몇 호입니까? 지금 남자 몇 호와 짝을 이뤘고, 여자 몇 호와 짝을 이뤘습니까? 그러나 여기서 되새겨야 할 점은 하느님께서 사람을 무의미한 번호가 아니라 고유한 인격체로 만드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흙에서 나왔지만 흙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인 우리가 짝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은 누구 덕분일까요? 지극한 사랑의 손길로 사람을 빚으신 하느님 덕분입니다.
 
[성서와함께, 2012년 2월호, 성서와함께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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