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자리] 역사서 해설과 묵상 3 : 역사서와 신명기의 관련성 (1)
역사서가 뒤따라오는 예언서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바로 앞에 있는 신명기와 관련성이 있는가? 몇몇 학자들은 신명기와 여호수아기 사이에 문학적인 연관성을 가정하고, 여호수아기 안에서 모세오경의 사료(J, E, D, P 사료)가 연속되어 나타나는지 연구했다. 이것이 이른바 말하는 ‘모세육경’의 이론이다. 더 나아가서 일부학자들은 모세오경의 사료를 찾는 작업을 열왕기 끝까지 확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판관기, 사무엘기 그리고 열왕기에서 모세오경의 사료들을 찾는 작업은 만족할만한 결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여호수아기의 사정은 약간 다르다. 여호수아기 안에서는 야휘스트 사료(J)나 엘로히스트 사료(E)와 연관성 있는 자료가 다소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명기의 영향이 가장 많이 발견된다.
신명기의 영향은 여호수아기 뿐만 아니라 뒤따라오는 책 안에서도 발견된다. 판관기에서는 많이 발견되고, 사무엘기에서는 상대적으로 적고, 열왕기에서는 신명기의 신학이 많이 발견된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신명기가 거대한 이스라엘 역사의 첫 부분이라는 가정도 가능하다. 예를 들면, 마르틴 노트(M. Noth)는 신명기를 ‘역사서의 서론’으로 가정했다.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선택이라는 교리를 체계화시켰고 그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 안에 ‘신정정치(神政政治)’를 정착시켰다. 이런 신명기의 사상으로 역사서 전체를 꿰뚫어 볼 수 있다. 여호수아기는 선택된 백성이 약속된 땅에 정착하는 사건을 말하고, 판관기는 선택된 백성이 끊임없이 하느님을 배반하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복귀하는 과정을 말하고, 사무엘기는 왕정체제로 넘어가면서 초래된 신정정치의 위기를 말하는 동시에 신정정치의 이상이 다윗에 의해 실현되는 과정을 말하고, 열왕기는 솔로몬 왕국에서 시작된 왕정체제의 문제점과 역대 임금들의 불충실 때문에 왕정이 몰락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실, 관점이 없이 역사를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사를 쓴다는 것은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사건을 나열해서는 역사가 될 수 없는 법이다. 그것은 사건의 수집이지 역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사건을 자신의 관점에서 기록하는 것이 본래 의미에서 역사를 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라고 할 때 두 가지 의미를 구별해야 한다. 하나는 과거에 벌어졌던 ‘사건 자체로서의 역사’와 또 하나는 어떤 사가에 의해 문자로 남겨진 ‘기록으로서의 역사’다. 이 두 가지 의미는 분명히 구별된다. 물론 어떤 역사가든 과거사건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과거의 사실을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관점에서 기록할 수 없다. 모든 역사가는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와 관심에 따라 과거사실을 기록한다. 이것을 인간의 한계라고 할 것이 아니라 해석학적 입장에서 볼 때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선이해(先理解)’와 이해의 ‘지평(地平)’에 따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묵상 주제
신명기 학파의 역사가는 신명기라는 관점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바라보고 기록했다. 나도 내 인생에 개입하시는 하느님의 역사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2012년 7월 22일 연중 제16주일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역사서 해설과 묵상 4 : 역사서와 신명기의 관련성 (2)
역사를 쓴다는 것은 과거사실의 의미를 현재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비판하는 해석학적 작업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과거사실을 통해 현재의 의미와 미래의 전망을 제시하는 것’이 역사가의 책무라고 볼 때 역사가는 단순한 기록자가 아니라 ‘역사 해석자’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역사가는 역사를 기록할 때 자신의 역사관과 방법론에 의거해 과거사실을 취사선택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결론을 이끌어내는 작업을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느 역사기록을 대하든지, 그 역사기록의 사실성 여부와 함께 그 역사를 쓴 사람의 역사관을 파악해야만 역사의 진실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기본적인 이론을 역사서에 적용해 보면 신명기 학파 역사가의 관점이 드러난다. 그것은 신명기라는 관점에서 이스라엘 역사를 쓴다는 것이다. 그러면 역사서 저자가 채용하는 신명기의 원칙은 어떤 것인가? 그 원칙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1) 하느님은 변함없이 당신의 약속을 충실히 지키신다(신명 9,1-6; 26,16-19).
2)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충실히 지키면 축복을 받고, 깨면 벌을 받는다(신명 4,21-31; 11,26-32; 28).
3) 오직 주 하느님 한 분만을 흠숭해야 한다(신명 4,39; 6,4-19; 13,2-19).
4) 오직 예루살렘에서만 하느님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신명 12,1-14).
5) 예언자들은 주 하느님의 대변자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신명 18,9-22).
신명기 학파의 역사가는 이런 관점에서 갖가지 구전전승과 방대한 자료를 편찬하고 정리했다. 그 자료에는 민속설화, 목격자들의 이야기, 역대 임금들의 치적에 관련된 왕실문서와 임금들의 재산목록, 예언자들에 관련된 자료들이 있다. 이런 사료들을 연대순으로 배열했지만, 가끔 교훈적인 목적에 따라 연대를 무시하고 배열하기도 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역사서를 읽을 때 중복된 이야기를 발견한다. 이것은 특별히 사무엘기 상권에서 잘 드러난다. 그것은 역사서 저자가 서로 다른 사료들, 출처가 다른 단편들(예를 들면 사무엘 원전과 사울 원전)을 연결하여 이스라엘에서 왕정의 출발과 다윗 임금의 초기 역사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고대 그리스나 현대의 사학자들의 기록에서 볼 수 있는 질서와 일목요연한 구성과 연속성을 신명기 학파의 역사서에서 찾아보기가 힘들다.
마지막 형태로 볼 때, 역사서는 신명기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학파의 작품임이 틀림없다. 이 학파는 이스라엘 백성의 과거역사를 묵상하고 거기서 종교적 교훈을 끌어낸다. 따라서 신명기 학파의 역사가는 이스라엘 백성과 역대 임금들의 과거사건을 사실대로 기록하기보다는 왜 이스라엘 백성이 멸망했는지 설명하고 교육하려는 의도로 역사를 썼다.
그러나 역사서에 신명기의 영향만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역사서 안에는 기원전 1200년 경 가나안 정착시대까지 소급되는 전통과 자료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묵상 주제
신명기의 원칙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에게만이 아니라 오늘날 내게도 적용되는 원칙이다. 이 원칙을 오늘날 내 삶에 적용해보자. [2012년 7월 29일 연중 제17주일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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