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이스마엘(Ishmael)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 때 동(東)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점령한다. 당시 이곳은 요르단 령으로 팔레스타인들이 ‘미래 독립국’의 수도로 생각하고 있던 곳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동서(東西)로 분리할 수 없다며 강제로 합병해 버린 것이다. 이렇듯 예루살렘 동쪽 지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에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곳엔 모리야(Moriah)산이 있기 때문이다. 산이라기보다는 낮은 언덕이라 표현해야 할 것이다. ‘모리야’는 ‘경외’, ‘빛’이란 의미다.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하느님께 번제물로 바치려 했던 바로 그 장소다.(창세 22장)
아랍인들은 이곳을 거룩한 땅(하람 알-샤리프)이라고 부른다. 아브라함 역시 그들의 조상이며, 이곳에서 아들을 제물로 바쳤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랍인들은 아브라함이 바친 아들은 이사악이 아니라 자신들의 조상인 ‘이스마엘’이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모리야산이 있는 동예루살렘은 이사악의 후손인 유다인과 이스마엘의 후손인 아랍인이 서로 자신들의 ‘성지 중의 성지’라고 주장하는 장소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역사상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7세기 초엽 아랍인들은 기어이 예루살렘을 정복했고 중세의 십자군 전쟁은 이를 되찾기 위한 전쟁이었다.
다윗은 모리야산 정상에 예루살렘 성전건립을 구상한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후계자를 봉헌한 곳이기 때문이다. 12지파의 중심이 될 장소로는 그곳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마침내 솔로몬 시대에 성전은 완성된다. 하지만 이(異)민족의 침입으로 여러 번 파괴되고 다시 지어지곤 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의 유일한 잔해가 ‘통곡의 벽’으로 알려진 서쪽 성벽이다.
현재의 황금 돔이 있는 성전은 7세기 중엽 이슬람교도들이 세운 건물이다. 성전 안에는 바위가 있다. 길이 13.5m, 폭 10.8m, 높이 1.8m인 바위다. 아랍인들은 이 바위가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하느님께 바치려 할 때 이용한 제단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이슬람’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밟고 승천했다는 바위라고 여기고 있다.
이스마엘은 ‘주님께서 들어주신다.’는 뜻이다. 후계자 신분에선 탈락했지만 하느님의 보호아래 있을 것이란 의미다. 그는 아브라함과 이집트 여자 ‘하가르’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사라의 몸종이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라가 남편에게 보낸 것이다. 그만큼 믿었던 여인이었다. 이스마엘은 13살에 할례를 받고 후계자 과정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사악이 태어나자 어머니 하가르와 함께 아브라함 곁은 떠나야 했다.
훗날 이스마엘은 이집트 여자와 혼인하여 12명의 아들과 딸 하나를 낳았다. 그들은 아라비아와 시리아 일대에 정착했고 그의 후손 중에서 이슬람교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출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2008년 6월 8일 연중 제10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삼천포본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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