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아담
아담은 창세기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간이다. 하느님께서 직접 흙으로 만드셨고 생기를 불어넣어 움직이게 하셨다.(창세 2,7) 그는 창조 마지막 날 태어났고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권한까지 받았다. 하느님의 안배였다. 이렇듯 아담은 아기로 태어나지 않았다. 어린이로 자라는 성장기도 없다. 처음부터 성인(어른)으로 창조된 것이다. 오늘날의 인간보다 분명 우월한 조건이었다. 더구나 주님께서는 하와까지 보내주셨다. 배우자 역시 아무런 고통 없이 만난 것이다. 두 사람은 낙원(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아담의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따진다면 모순점이 많다. 그러기에 논리를 떠난 설화(說話)로 받아들여야 한다. 설화란 ‘전설, 신화, 민담’ 따위의 내용을 소재로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는 이야기를 뜻한다. 이렇듯 아담의 출현은 ‘인간기원’에 대한 성경의 해석이다. ‘사람은 어떻게 태어났는가.’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인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얼마 뒤 낙원을 떠나게 된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먹지 말라고 명한 것이었다. 첫 사람 아담은 이렇게 해서 ‘삶과 죽음’의 고통을 만나게 된다.
아담의 죄는 하느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었다. 즉 불순종이었다. 인류의 첫 범죄가 불순종이었다는 것은 인간사회의 끝없는 대립을 예견하고 있다. 그러므로 ‘선악의 나무’는 하나의 가르침이다. 순종하면 축복을 만나고 불순종하면 파멸을 겪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아담(adam)이란 말은 ‘흙’을 뜻하는 히브리어 아다마(adamah)가 어원이라고 한다. 사람의 근본이 흙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현대 히브리어에서는 ‘아다마’가 ‘사람 전체’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고 한다. 한편 하와는 ‘살다’라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 동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녀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창세 3,20)
하느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를 뽑아 하와를 만드셨다는 묘사도(창세 2,22) 실제로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니다. 최초의 여자 역시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현일 뿐이다. 다시 말해 여자의 기원도 남자와 꼭 같이 하느님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유다인들의 교훈서인 ‘탈무드’에 보면 이러한 표현을 돕는 재미있는 구절이 있다.
‘하느님께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명령을 하도록 남자의 머리로부터 만들어내지 않으셨다. 여자가 남자의 노예가 되도록 남자의 발로부터 만들어 내지도 않으셨다. 오히려 여자가 남자의 심장(마음) 가까이 있도록 남자의 옆구리로부터 만들어 내셨다.’
에덴동산을 숲이 무성한 낙원으로 묘사한 것도 유목민의 심리에 맞는 표현이다. 그들은 언제나 물이 풍부하고 그늘이 많은 오아시스를 꿈꾸고 있었다. 일상의 더위와 목마름을 식혀줄 이상향으로 여겼던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성서에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당시대 사람들도 그들에 대해선 역사적 존재 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의 족보에서 아담에 대한 기록을 생략했다. 하지만 루카 복음서는 언급하고 있다.(루카 3,38)
[2008년 7월 13일 연중 제15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삼천포본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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