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대사제 엘리
엘리는 판관시대 말기에 등장한 ‘실로’의 대사제였다. 당시 실로(shiloh)는 이스라엘의 ‘중앙 성소(聖所)’로써 중요한 제사는 이곳에서 봉헌해야 했다. ‘계약의 궤’를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 지파의 세력가들은 실로에 오지 않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제사를 바쳤다. 그만큼 종교적으로 무질서한 상태였다.
계약의 궤는 아카시아나무로 만들어졌고 길이 1.3m 너비와 깊이는 79cm이었다. 안팎을 금으로 감쌌고 금판을 씌운 뚜껑을 덮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에서 계약의 궤를 ‘모든 것’의 중심으로 삼았다.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며 당신 말씀을 전해주는 장소로 여겼던 것이다. 계약의 궤 안에는 대사제 ‘아론의 지팡이’와 ‘만나를 담았던 황금 그릇’과 ‘십계(十誡)를 새긴 2장의 석판’이 담겨 있었다.
이렇듯 실로는 위대한 장소였고 엘리는 막강한 권한의 대사제였다. 하지만 그의 정치력은 빈약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임금이 없었기에 지파의 대표들이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 엘리는 그들을 규합하고 움직여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오히려 지파들은 자신들의 본거지에서서 집회를 열고 정치적 입지를 넓혀 나갔다. 자연히 실로는 쇠락해갔고 대사제의 영향력은 줄어들었다.
기원전 1050년경 이스라엘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계약의 궤’를 빼앗기는 수모를 겪는다. ‘에벤에제르’라는 곳에서 두 진영이 부딪쳤는데 이스라엘이 패했다. 사천 명의 군사를 잃는 참패였다. 그러자 원로들이 ‘계약 궤’를 모셔오자는 제안을 했다. “주님께서 어찌하여 오늘 필리스티아인들 앞에서 우리를 치셨을까? 실로에서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옵시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오시어 원수들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합시다.”(1사무 4,3)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또 다시 지고 만다. 계약 궤를 모셨지만 주님의 능력이 함께 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아무리 성스러운 물건을 모셨더라도 믿음 없이 행했다면 소용없는 일이 된다는 교훈이었다. 이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계약 궤’를 빼앗기며 삼만 명의 보병을 잃었다. 충격적인 참변이었다. 엘리 역시 소식을 접하자 쇼크를 받고 죽었다. 계약의 궤는 7달 동안이나 블레셋 진영에 있었다가 반환되었다.
이후 실로는 역사에서 사라진다. ‘계약 궤’가 떠났기에 더 이상 이스라엘의 중앙성소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점차 떠나갔고 결국은 폐허의 도시가 되었다. 반환된 ‘계약의 궤’는 장막 속에 보관하다가 솔로몬 임금이 예루살렘 성전을 완공한 뒤 그곳에 모셨다. 계약의 궤를 모신 장소를 ‘지성소’라고 불렀다.
엘리는 판관기 말기에 등장해 40년간 대사제 직분을 수행했다. 하지만 힘이 없었다. 군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파워는 지파의 대표들에게 있었고 엘리는 종교적 업무만 수행할 뿐이었다. 이런 이유로 백성들은 강력한 왕의 출현을 기다렸다. 말년의 엘리는 자녀들 때문에 명성에 먹칠을 한다. 제물을 바치러 온 이들에게 사기를 치고 행패를 부리곤 했던 것이다. 엘리는 자신의 후계자로 ‘사무엘’을 점지하고 그에게 기대를 걸게 된다.
[2008년 11월 9일 연중 제32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삼천포본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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