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요압
요압은 다윗의 누이 ‘츠루야’의 아들이다.(1역대 2,16) 당연히 그는 다윗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고 군대의 지휘관을 거쳐 사령관까지 되었던 인물이다.(2사무 8,16) 다윗은 젊은 시절부터 사울의 집요한 추적을 받는다. 틈만 나면 사울은 그를 제거하려 했다.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던 다윗이 왕위를 노린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다윗을 그림자처럼 보필하며 ‘동고동락’했던 사람이 요압이다.
요압은 다윗이 12지파를 평정하고 통일 왕국을 이룰 때 군사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가 없었다면 다윗은 마음대로 자신의 뜻을 펼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시온 산’을 정복할 때도 요압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곳에 남아 항전을 벌이던 ‘여부스 족’을 몰아낸 사람은 다름 아닌 요압이었다.(1역대 11,6)
훗날 ‘시온 산’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상징하는 땅이 된다. 기원후 2세기에 로마제국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평정하고 유다인들을 나라 밖으로 강제 추방하였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은 유럽 각지에 흩어져 살았다. 하지만 신앙을 중심으로 굳게 뭉쳤고 언젠가는 예루살렘이 있는 ‘시온 산’으로 갈 것을 희망하며 살았다. 이 염원을 ‘시오니즘’이라 한다.
아무튼 요압의 활동 시기는 다윗의 도피 때부터 솔로몬의 ‘즉위’까지다. 말년의 다윗은 왕위 계승권을 확실하게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장자였던 ‘아도니야’는 계승권을 굳히려고 요압을 포섭한다. 그는 병권(兵權)을 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왕위는 솔로몬에게 돌아가고 두 사람은 정적으로 몰리게 된다. 이후 아도니야와 요압은 보복차원에서 숙청되었다.
한때 그토록 용감했고 화려한 전력을 남긴 요압이었지만 말년은 초라하게 전해지고 있다. 모든 역사는 승자의 차원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다윗 치세 중 최대고비는 아들 압살롬이 일으킨 쿠데타였다. 그때 다윗 임금은 ‘쿠데타 군’에 밀려 도망치는 신세까지 된다. 사건을 역전시켜 진압한 사람은 요압이었다. 그러자 다윗은 압살롬을 살려두라고 한다. 하지만 요압은 그를 살해한다. 그만큼 상황판단과 결단력이 뛰어났던 것이다.
요압은 처세술에 능하고 약삭빠른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그는 다윗의 명령으로 자신의 수하였던 ‘우리야’까지 죽게 하며 명령에 충실했던 군인이었다.(2사무 11,6) 그런가 하면 다윗이 자만에 빠져 이스라엘의 인구조사를 명했을 때 조심스레 반대하기도 했다.(2사무 24,3) 그리고 전쟁에서의 전리품을 성별하여 주님께 바치는 역할도 담당했다.(1역대 26,28) 하지만 이 모든 업적은 솔로몬을 지지하지 못하는 바람에 퇴색되고 만다. 왕정 시대의 사람들이 후계자 문제에 그토록 매달렸던 이유다.
[2009년 2월 15일 연중 제6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호계본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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