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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성경 속의 인물: 르하브암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10-03 조회수2,886 추천수1
[성경 속의 인물] 르하브암


솔로몬이 죽자 이스라엘은 급속히 약화된다. 그리하여 기원전 932년 마침내 분열된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라는 새로운 이름의 두 왕국이 등장한 것이다. 분열은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서로의 적대관계’는 신앙의 결속력을 와해시켰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흔드는 일이었다. 하느님의 선민이 갈라져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적으로는 주변 국가의 간섭이었다. 다윗과 솔로몬시대에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대등한 입장이었지만 이제는 힘의 균형이 깨진 것이다. 외국과 맞서야 할 군대가 민족끼리 부딪치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남과 북은 인근 강대국에게 ‘러브콜’을 한다. 남쪽은 이집트의 비위를 맞추었고 북쪽은 아시리아의 눈치를 봐야했다.

분열의 싹은 솔로몬 말기부터 감지되고 있었다. 학정과 세금정책에 시달린 백성들이 그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르하브암’이 왕위에 오르자 지파의 대표들은 완화된 세금정책을 건의하며 개혁을 바랬다. 하지만 반응은 차가웠다.

‘내 아버지께서 그대들의 멍에를 무겁게 하셨는데 나는 더 무겁게 하겠소. 내 아버지께서는 가죽 채찍으로 치셨지만 나는 갈고리 채찍으로 칠 것이오.’(1열왕 12,14) 르하브암이 이렇게 나오자, 북쪽 지파들은 서둘러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분열은 기정사실화되기 시작했다.

‘르하브암’은 솔로몬과 암몬 여자 ‘나아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1열왕 14,21) 그는 이스라엘 4번째 왕이지만 왕국 분열로 ‘가장 아둔했던 왕’으로 기억되고 있다. 슬기롭게 대처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남쪽은 유다지파와 벤야민 지파의 나라가 되었고 북쪽은 나머지 10지파가 ‘에프라임 지파’를 중심으로 뭉쳤다.

르하브암은 41살에 임금이 되어 17년간 다스렸다. 그에게는 18명의 아내와 60명의 소실이 있었다. 그리고 28명의 아들과 60명의 딸을 두었다.(2역대 11,21) 백성들은 세금과 부역으로 곤경을 겪었지만 왕실은 호화의 극치를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느님의 ‘경고’는 르하브암 제5년에 일어난다. 이집트 임금 ‘시삭’이 침공한 것이다. 그는 6만의 정예군을 앞세워 한순간에 예루살렘을 점령했다.(2역대 12,3) 그리고 성전과 왕궁에 있던 보물들을 모두 약탈했다. 솔로몬이 만들었다는 ‘금 방패’마저 가져갔다. 르하브암이 얼마나 서둘러 도망쳤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제야 르하브암은 예언자 ‘스마야’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며 몸을 낮춘다. 이후 남쪽 유다국은 한동안 이집트에 조공을 바치며 살아야 했다.

[2009년 4월 5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호계본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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