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마사다
‘마사다’는 해발 434m의 바위산이다. 예루살렘 남쪽의 유다광야 동쪽 끝에 홀로 솟아있다. 인근에는 사해(死海)가 있다. 마사다의 존재는 유대 역사학자인 ‘요세푸스’에 의해 알려졌다. 그는 ‘유대독립전쟁’을 책으로 발간하면서 마사다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요세푸스는 예루살렘의 ‘제사장 가문’ 출신으로 한때 바리사이파에 속했던 인물이다.
기원후 66년 열혈당원(Zealot)들은 유다인들을 선동해 로마총독을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열혈당원은 로마에 항거하는 비밀 결사대였다. 그들은 혁명정부를 세우고 로마제국에 맞섰다. 하지만 자살행위였다. 요세푸스는 제사장들과 함께 그들을 설득하며 타협을 권했지만 실패한다. 이후 그는 ‘갈릴래야 군대’의 지휘관이 되었고 ‘마사다 요새’를 알게 되었다.
마사다의 바위산을 요새로 만든 이는 ‘헤롯대왕’이었다. 기원전 35년, 그는 이곳에 성벽을 두르고 무기와 식량을 저장했다. 당시 헤롯은 로마의 후원으로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이스라엘을 자기에게 달라고 ‘안토니우스’에게 청을 넣은 것이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의 연인으로 로마제국의 2인자였다. 이를 알게 된 헤롯은 로마의 배신에 대비해 마사다에 피난처를 만들었다고 한다.
헤롯대왕은 기원후 4년에 죽었다. 한동안 묻혀 있던 마사다는 유다 독립전쟁 때 세간에 알려진다. 로마군에 쫓기던 반란군이 이곳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서기 70년 로마군은 유대 혁명정부를 타파하고 예루살렘을 불태웠다. 열혈당원들은 끝까지 저항하다 마사다로 숨어들었다. 그곳에는 헤롯대왕이 준비해둔 옥수수와 콩, 포도주와 기름 등이 있었다. 사막의 건조한 날씨 덕에 썩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헤롯이 만든 여러 물탱크에는 물이 가득했다.
마사다에 모여든 유다인은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합쳐 천 명 가량 되었다. 그들은 게릴라식 전법으로 끊임없이 로마군을 괴롭혔다. 하지만 마사다는 천혜의 요새인지라 로마군의 접근이 쉽지 않았다. 서기 72년 ‘실바 장군’은 9,000명의 군인과 전쟁포로 6,000명을 이끌고 마사다를 포위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반란의 불길이 다시 타오를 것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그들은 비탈을 이용해 마사다 높이의 ‘임시토성’을 쌓고 그 위에서 공격을 개시했다. 투석기와 불화살을 이용해 성 안을 불태운 것이다. 공격은 하루 종일 계속되었다. 다음날 로마군은 구름다리를 이용해 성안으로 진격했다. 하지만 아무런 저항이 없었다. 모두 자결했던 것이다. 이후 마사다의 출입은 금지되었고 역사에 묻혀버렸다. 이스라엘 정부는 1963년부터 마사다 발굴을 공식화했는데 성벽에 붙어지은 방이 무려 110개라고 한다. 마사다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자료다. 이스라엘 사관생도들에게는 마사다 참배가 의무적이다.
[2009년 5월 31일 성령 강림 대축일(청소년 주일, 생명의 날)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호계본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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