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페르시아
페르시아는 ‘이란 민족’이 세운 고대국가다. 그들은 이란고원 남족의 파르스(Fars) 해안지대를 본거지로 삼았다. 그런 이유로 그리스인들은 파르시스(Farsis) 사람들이라 했고 로마인들이 라틴말로 페르시아(Persia)라 했다. 하지만 그들은 페르시아보다 ‘아리아인의 땅’으로 부르기를 더 원했다고 한다.
1935년 ‘레자 샤’ 국왕은 나라이름을 ‘이란’으로 바꾼다. ‘아리아인의 땅’이라는 의미다. 이렇듯 이란의 뿌리는 ‘아리아인’이다. 그들은 이란고원과 인도 북부지역을 누비던 유목민으로 유럽인에 가깝다. 따라서 남부지역의 바빌로니아인과는 차이가 있다. 바빌론 사람들은 오늘날의 ‘이라크인’이다. 그러므로 이란과 이라크는 민족 자체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페르시아의 큰 뿌리는 구약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메디아인’이다. 그들 역시 메소포타미아 북쪽에 살았던 유목민이다. 따라서 남쪽의 바빌로니아(이라크)보다 문화수준이 낮았다. 그러나 제국을 건설한 뒤에는 정복한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여 ‘새로운 문화’를 계속 만들어갔다. 이것이 페르시아 문화다 이 작업을 강력히 추진한 사람이 대왕으로 불린 ‘키루스 2세’다(에즈 1,1).
그는 바빌론의 포로였던 이스라엘 민족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냈고 성전을 다시 짓도록 허락했다. 그리고 유다교의 신앙과 제례의식까지도 허용했던 인물이다. 기원전 529년 키루스는 전쟁 중에 사망한다. 그러자 페르시아는 8년간의 혼란기를 거치는데 근위대 출신의 왕족이었던 ‘다리우스’가 왕위에 오르면서 제국은 안정된다. 다리우스의 아들이 ‘크세르크세스’이며(에즈 4,6), 손자가 ‘아르타크세르크세스’로(에즈 8,1) 에즈라를 예루살렘에 파견했던 임금이다.
다리우스와 크세르크세스의 시대의 페르시아는 방대했다. 동쪽 경계는 인도였고 서쪽은 북아프리카의 리비아였다. 북쪽은 우즈베키스탄과 닿았고 남쪽은 아라비아 반도였다. 너무 광활했기에 오래가지는 못했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등장으로 붕괴되고 만다.
이후 페르시아는 그리스의 지배를 받게 된다.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뒤에는 그의 심복이었던 ‘셀레우코스’가 다르셨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시작이다. BC 250년에는 ‘파르티아 제국’이란 이름으로 로마와 맞서며 페르시아는 명맥을 이어갔다. 기원후 226년부터는 ‘사산왕조’가 다스렸고(226-651) ‘사파비 왕조’(1500-1722) ‘팔레비 왕조’(1925-1979) 등이 대표적인 지배계급이다. 1935년 3월 21일 팔레비 왕조의 ‘레자 샤’ 국왕은 페르시아란 이름을 폐기하고 ‘이란’으로 공식 선언했다.
[2010년 1월 24일 연중 제3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호계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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