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암몬족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로 소돔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 사건 때 아내를 잃고 만다. 돌아보지 말라는 천사의 권고를 무시하다 소금기둥이 된 것이다(창세 19,26). 이후 롯은 자신의 딸을 취해 두 아들을 낳는다. ‘모압’과 ‘벤 암미’다(창세 19,30-38). 참세기는 이들을 모압족과 암몬족의 시조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아랍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아무튼 암몬족은 요르단 강 동편에 자리 잡고 살았다. 그들의 중심도시를 성경에서는 ‘라빠’라 했다(1역대 20,1). 오늘날 ‘요르단 왕국’의수도인 ‘암만’이다. 중동 전쟁 당시, 이스라엘의 공항검문이 까다로우면 여행객들은 암만을 통해 들어갔다. 자동차를 이용해 국경을 넘은 것이다. 이스라엘도 그쪽 통로는 수월하게 열었다. 생필품이 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리적으로 가까웠다.
암만지역은 물이 풍부하다.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들이 곳곳에 있다. 이스라엘이 모세의 인도로 가나안 정착을 시도할 때 암몬족은 이미 군사체제를 갖춘 막강한 부족이었다(민수 21,24). 그런데 모세는 암몬인의 땅 절반을 ‘가드지파’의 땅으로 미리 분배해버린다(여호 13,24-28). 남의 땅을 이스라엘 것으로 선언한 것이다. 이후 두 민족은 틈만 나면 부딪친다. 서로 자신의 땅이라 외치며 싸웠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암만(라빠)을 처음으로 정복한 것은 다윗 임금 시절이다(2사무 12,26). 다윗의 심복이었던 요압장군은 오랜 전투 끝에 암만시내로 진입할 수 있었다. 사무엘기 하권에는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 세바’와 혼인하기 위해 우리야를 격렬한 전쟁터로 보내 죽게 하는 대목이 있다(2사무 11,15). 암몬족과의 전투였다. 우리야는 암만의 성벽 앞에서 활에 맞아 전사했던 것이다.
이후 암몬족은 강대국에 끌려가는 운명이 된다. 기원전 3세기에는 ‘그리스’가 팔레스티나를 장악하자 암만은 ‘필라델피아’란 이름으로 바뀐다. 이집트 임금 ‘필라델푸스’가 자신의 이름을 따라 바꾼 것이다. 이 명칭은 로마 시대까지 통용되었다. 예수님 시대에는 요르단 강 동쪽의 ‘10도시’를 ‘데카폴리스’라 했는데(마태 4,25) 암만은 가장 화려한 도시였다. BC 63년부터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이 로마식으로 리모델링했기 때문이다. 이후부터 암만(필라델피아)은 이집트와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를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도시로 떠오른다.
기원후 4세기에는 암만에도 그릿도교가 전파되었고 대주교가 거주하는 큰 교회가 있었다. 하지만 635년 아랍통치가 시작되면서 기독교는 자취르 감추게 된다. 20세기 초에는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았고 세계대전 이후 ‘요르단 왕국’의 출범과 함께 암만은 수도가 되었다.
[2010년 3월 28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호계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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