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제2경전
구약성경은 기원전 13세기부터 시작되었다. 문자보다 구전(口傳)이 앞선다. 그러다 바빌론 포로시대를 거치면서 기록으로 정착되었고 ‘일정한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물론 전부 히브리말이었다. 그러나 기원전 3세기가 되자 본토 유다인보다 해외 유다인의 숫자가 더 많아졌다.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그리스말을 사용했다.
유다 공동체는 그리스말로 성경을 번역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히브리말을 모르는 세대들이 대세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희랍말로 번역된 성경이 등장했다. 이 성경을 ‘칠십인 역’(septuaginta)이라 한다. 기호로는 로마숫자 70을 뜻하는 ‘LXX’을 사용한다. 기원전 3세기경 북아프리카의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런데 번역을 주도한 ‘알렉산드리아 공동체’는 옛 문헌을 희랍말로 옮기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내용을 추가했는데 7권이었다. 그러니까 7권의 책은 히브리말로 전해오던 문헌의 번역이 아니고 희랍말로 구성한 새로운 문헌이었다. 보수색이 짙은 유다인들은 반발했고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결국 300년 뒤에 있었던 유다교의 ‘얌니아 선언’에서 7권의 책은 성경 목록에서 삭제된다.
문제의 책 일곱은 ‘토빗기’, ‘유딧기’,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마카베오기 상하권’이다. 그런데 16세기 종교개혁 때 프로테스탄트 측은 구약의 범위를 얌니아 선언으로 채택했다. 그래서 개신교의 구약성경은 39권이다. 하지만 가톨릭은 기존 입장인 ‘70인 역’을 고수했다. 7권을 포함해 46권을 구약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1977년 한국 천주교와 개신교는 공동으로 성경을 번역했다. 여기에서 7권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논의했다. 개신교 측은 외경이라 했고 가톨릭 측은 ‘제2경전’(deuterocanon)이라 했다. 하지만 이제 ‘공동번역’은 사용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제2경전’이란 말도 사용하지 않는다.
제2경전 혹은 외경이란 말은 기원후 90년에 열린 ‘얌니아 선언’ 이후에 등장한 말이다. 그 이전에는 그런 표현 자체가 없었다. 기원후 70년 로마군은 예루살렘을 함락했다. 성전은 파괴되었고 남자들은 살해되거나 노예로 끌려갔다. 랍비들은 이스라엘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율법과 예언서만은 보존해야겠다고 판단한다. 그리하여 지금의 ‘텔아비브’에서 20km 정도 떨어진 얌니아(Jamnia)라는 곳에 모여 유다교 전반에 관한 논의를 가졌다. 기원후 90년경의 일이다.
중추역할을 한 랍비는 ‘요하난 벤 자카이’였다. 그는 이미 얌니아에 율법학교를 세워 유다인의 전승을 이어가고 있었다. ‘얌니아 회의’에서 구약성경은 39권으로 확정된다. 그리고 그리스도교를 이단으로 선언한다. 유다교와 기독교의 결별을 공식화한 것이다.
[2010년 4월 18일 부활 제3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호계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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