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천사 (1)
천사는 영적 존재이기에 육체가 없다. 남녀구별과 나이도 무의미하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모습을 드러내야 했다. 기록에는 두 모습이 있다. 첫째는 날개가 없는 보통 사람의 모습이다. 평범한 어른 남자의 형태를 취한 것이다. 두 번째는 날개를 가진 특별한 존재다. 대표적인 것이 ‘세라핌’과 ‘케루빔’이다.
세라핌(Seraphim)은 서랍(seraph)의 복수 형태로 천사를 가리키는 특수용어다. 이 단어는 이사야 예언서에 처음 등장한다(이사 6,2). 그들은 하느님을 보좌하는 천사로 서열이 가장 높다. 케루빔(Cherubim)은 커룹(Cherub)의 복수 형태로 두 번째 서열의 천사들이다. 유다인들은 아담과 하와가 떠난 에덴을 이들이 지키고 있다고 믿었다(창세 3,24). 그런 까닭에 ‘계약 궤’에 커룹들을 새겼고(탈출 25,18-22) 성전의 지성소에도 나무로 만든 커룹들을 세워 두었다(1열왕 6,23-28). 지성소는 주님께서 상존하시는 곳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중세 이전의 그림에는 천사들이 청년의 모습으로 등장하며 날개가 없다. 날개를 지닌 천사는 중세 이후의 그림부터 나타난다. 유럽인의 옷을 입었고 우아한 자태를 지닌 젊은이들이다. 인간적 표현이 자연스럽게 가미된 것이다. 특히 미카엘 천사는 갑옷과 함께 검을 든 전사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악과 싸우는 사명을 지녔기 때문이다. 가브리엘과 라파엘은 섬세하고 자상한 남성의 모습이 대부분이다.
천사는 하늘사자(天使者)의 줄임말이다. 하늘의 명을 받고 심부름하는 자라는 뜻이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을 데려가는 이를 ‘저승사자’라 했다. 이들이 동양적 의미에서 천사인 것이다. 천사를 히브리말로는 말라흐(mal'ah)라 했다. 직역하면 ‘심부름꾼’이다. 이 용어를 그리스말로 번역한 것이 ‘안겔로스’(Angelos)이며 라틴어 ‘안젤루스’와 영어의 에인절(Angel)은 여기서 파생된 단어들이다. 말뜻은 ‘파견된 자’라는 의미다.
유다인은 천사들을 ‘하느님의 분신’으로 여겼다. 그들이 조상들을 인도하고 지켜주었기에(창세 24,7) 민족이 가능해졌다고 믿었다. 욥기는 ‘하느님의 아들들’(욥 2,1)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한다. 그만큼 가깝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사탄 역시 원래는 천사였는데 하느님과 맞서다 악한 천사가 되었다는 것이 민간신앙이다. 이 항명사건에서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고 외치며 수습한 인물이 미카엘이다. 그의 외침은 그대로 이름이 되었다. 이 전승을 배경으로 나타난 것이 ‘묵시록 12장’이다. 사탄의 세력을 상징하는 ‘거대한 용’을 미카엘이 쳐부수는 내용이다. 묵시록의 용과 뱀은 당시 교회를 핍박하던 박해자들을 상징하는 인물로 보고 있다. [2010년 7월 18일 연중 제16주일(농민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호계본당 주임)]
[성경 속의 인물] 천사 (2)
천사 역시 피조물이기에 메신저로 파견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영적 존재였다. 이렇듯 주님께서는 감각인 물질세계와 감각을 뛰어넘는 영적 세계를 함께 창조하셨다. 이를 받아들였기에 교회는 천사의 존재를 ‘신앙교리’로 선언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천사들은 인간에 대한 주님의 사랑을 증언하는 분들이다.
가브리엘 천사는 루카복음 서두에서 메시아의 출현을 예고한다(루카 1,26-38). 유다인의 염원이 담긴 사건이기에 천사의 출현은 당연하다. 그런데 왜 가브리엘이었을까? 그는 이미 다니엘 예언서에 등장한 바 있다. 다니엘이 환시 중에 뜻을 몰라 애태울 때 그가 나타나 의미를 깨우쳐주었던 것이다(다니 8,15-9,27). 내용은 ‘기름부음 받은 영도자’가 온다는 메시지였다. 그것은 구세주의 출현을 예고하는 말씀이었다. 이런 이유로 루카복음의 메신저로는 가브리엘이 당연했다. 가브리엘의 말뜻은 ‘하느님의 힘’이란 의미다.
그는 사제 즈카르야에게도 나타나 아들을 갖게 되리라는 희망을 전한다. 세례자 요한의 출현을 예고한 것이다(루카 1,11-21). 그러면서 자신의 임무가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루카 1,19). 이슬람교에서도 예언자 ‘마호메트’를 인도한 천사는 가브리엘이라고 가르친다. 중요한 인물의 출현에는 늘 그가 함께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라파엘 천사는 구약성경 ‘토빗기’에 유일하게 등장한다. 라파엘의 말뜻은 ‘주님의 치유’라는 의미다. 의인 토빗과 그의 아들 토비야는 ‘니네베’에서 포로생활을 했지만 하느님께 충실했다. 어느 날 토빗에게 불행이 닥친다. 하찮은 일로 눈이 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시어 그들을 지켜주시며 토빗의 눈도 뜨게 해주신다. 모든 일이 마무리되자 라파엘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낸다. 주님 앞에 머물며 그분께 시중드는 ‘일곱 천사’ 중의 하나라고 고백한 것이다(토빗 12,15).
이렇듯 성경에 이름이 명시된 천사는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뿐이다. 물론 이름 없는 천사도 여럿 있다. 요셉의 꿈에 나타난 천사(마태 2,13), 희고 긴 옷을 입은 젊은이(마르 16,5),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마태 26,53), 사도들을 감옥에서 탈출시키는 천사(사도 5,19) 등이다. 천사에 대한 공식입장은 1215년에 열린 ‘제4차 라테란 공의회’가 처음이다. 하지만 유권적인 해석을 내리지는 않았다. 천사의 본질과 역할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서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이외의 다른 천사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금지시켰다. 오늘날 대천사 축일은 9월 29일이다. 원래 이날은 로마에 세워진 미카엘 대성당의 봉헌식이 있은 날이었다. 그런데 이날 세 분의 대천사를 함께 기리면서 축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2010년 7월 25일 연중 제17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호계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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