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드보라
판관 에훗이 죽자 히브리인들은 다시 우상숭배에 빠졌다. 하느님의 기운은 차츰 그들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불신이 만연해졌을 때 가나안 임금 ‘야빈’이 쳐들어왔다. 이스라엘은 변변히 싸우지도 못한 채 점령당하고 만다(판관 4,2). 야빈의 통치는 가혹했다. 군대를 앞세워 모든 것을 뺏어갔다. 백성들은 뉘우치며 도우심을 청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그들의 하소연은 20년간 지속되었다. 마침내 주님께서는 구원자를 보내셨는데 그가 판관 ‘드보라’다.
랍비들의 전승에 따르면 당시 드보라(Deborah)는 장막의 등잔불을 지키는 여인이었다. 그런데 ‘주님의 영’이 그녀에게 내린 것이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지 사람들의 판단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셨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드보라는 ‘여자 판관’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능숙하게 군대를 지휘하며 지파간의 갈등도 무난히 중재해 나갔다. 주님께서 함께 하셨던 것이다.
마침내 드보라는 가나안의 야빈과 일전을 벌린다. 상대는 900대의 전차와 30만의 정예부대를 거느린 백전노장이었다. 그런데다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지배했기에 히브리인들은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인간적 계산으로는 승산 없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드보라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열 지파는 제외시키고 납탈리와 즈불룬 지파에서만 군사를 뽑았다. 그것도 만 명으로 제한했다. 어차피 이번 싸움은 숫자의 문제가 아님을 드러낸 것이었다.
드보라는 ‘바락’을 사령관으로 임명하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외친다. ‘주님께서는 야빈의 군대와 전차부대를 우리 손에 맡길 것이오.’(판관 4,7) 하지만 바락은 드보라가 동행하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고 버틴다. 그녀 없이는 이길 수 없음을 알았던 것이다. 바락의 군대는 ‘타보르 산’에 진을 쳤다. 타보르 산은 해발 588m로 갈릴래아 호수 남쪽에 있었다. 전투는 이스라엘의 승리로 마감된다. 주님께서 개입하시어 야빈의 군대를 혼란에 빠뜨렸던 것이다. 드보라는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남겼다. 판관기 5장에 등장하는 ‘드보라의 노래’다. 독립된 구전으로 전해오다 편집과정에서 판관기에 삽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12세기의 이스라엘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아무튼 당시 사회는 남자가 아니면 공직에 설 수 없었다. 더구나 드보라는 혼인한 신분이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그녀를 선택하셨다. 사람의 기준으로 주님의 일을 판단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드보라의 삶 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2010년 10월 17일 연중 제29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호계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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