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헤브론
헤브론은 예루살렘 남쪽 30km 지점에 있다. 해발 1000m의 고지대라 옛날부터 유명한 포도 산지였다. 오늘날도 농산물 거래와 가죽 제조업은 이스라엘 내에서 알려져 있다. 구약의 헤브론은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의 죽음과 함께 등장한다. 그녀는 헤브론에서 죽었고 그곳의 ‘막펠라 동굴’에 안장되었던 것이다(창세 23,19). 이후 아브라함과 이사악 부부도 이곳에 묻힌다. 이런 이유로 유대교에서는 예루살렘 다음으로 신성시하는 도시다.
어느 날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을 건네신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창세 12,1)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던 ‘75살의 아브라함’은 깜짝 놀라 일어난다. 그리고는 서둘러 가족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부르심에 응답한 것이다. 하지만 ‘약속의 땅’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팔레스티나 남부를 헤매다 헤브론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사라가 죽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터키 땅인 ‘하란’을 출발해 예루살렘 인근에서 둥지를 튼 것이다.
훗날 야곱도 자신이 죽으면 헤브론에 묻을 것을 명한다. 자녀들은 첫 부인 레아와 함께 아브라함 곁에 안장했다. 야곱의 둘째 부인 라헬은 베들레헴 인근에서 벤야민을 낳다가 죽었기에 그곳에 무덤이 있었고(창세 35,20) 헤브론으로 이장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헤브론은 유다인들에게는 조상들의 묘소가 있는 도시가 되었다.
헤브론의 옛 이름은 ‘키르얏 아르바’였다(창세 23,2).아르바는 ‘넷’이고 ‘키르바’는 동네를 뜻한다고 한다. 따라서 동맹을 맺은 4개의 부락이 정착했던 곳으로 추측하고 있다. 아무튼 헤브론은 고대 가나안의 수도였음이 입증된 도시다. 한편 1967년 ‘6일 전쟁’ 이후 유다인들의 유입이 많아졌고 이들은 헤브론 인근에 정착촌을 만들며 신도시를 형성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 주거지를 ‘키르얏 아르바’라고 부르고 있다.
다윗시대의 헤브론은 그가 왕으로 성별된 곳이기에 신성시되었다. 12지파의 원로들은 헤브론에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던 것이다(2사무 5,3). 그런 까닭에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헤브론에서 반기를 들고 아버지의 왕권에 도전한다. 다윗은 어쩔 수 없이 요르단으로 피신해야 했었다. 훗날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은 아브라함처럼 헤브론을 첫 정착지로 정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만큼 상징성이 큰 도시였다. 현재도 유다인과 무슬림들이 함께 예배를 보며 화합을 모색하고 있는 도시다.
[2010년 12월 5일 대림 제2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호계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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