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열혈당(젤롯)
열혈당은 젤롯(Zealots)의 번역이다. 이들은 로마 식민통치에 폭력으로 항거한 민족주의자들이다. 로마에 세금 내는 것을 반대했으며 그들의 글자까지 외면했던 사람들이다. 이들 중 극우파를 시카리(Sicarii)라 했다. 독립을 위해서는 살인도 불사한다며 단검을 품고 다녔던 행동대원들이다. 라틴어 시카리우스(Sicarius)가 어원이며, 이 단어는 ‘자객’을 뜻했다. 열혈당은 기원전 6년 헤롯대왕 때 출현해 기원후 73년 사해 인근의 마사다 요새에서 전멸했다.
AD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되자 이들은 가족과 함께 마사다로 피신해 로마에 항전했다. 요새에는 헤롯대왕이 숨겨둔 무기들이 많았던 것이다. 열혈당은 3년을 버티었다. 하지만 로마인들도 끈질겼다. 그들은 마사다 주위에 흙을 쌓아올려 요새로 들어가는 입구를 만들었다. 길이 197m, 높이 55m의 경사진 도로였다. 이렇게 되자 열혈당의 리더였던 ‘엘리아자르’는 가장들을 설득해 가족을 살해하도록 했다. 그리고 남은 가장들도 제비뽑기로 차례차례 살해되었다. 마침내 남은 한 사람이 요새에 불을 지른 뒤 자결하였다. 이렇게 죽은 자들이 960명이었다고 한다. 이 기록은 독립전쟁에 참전했다가 로마의 포로가 된 뒤 역사가로 변신한 ‘요세푸스’의 증언이다.
열혈당은 로마의 통치를 근본적으로 반대했다. 이스라엘은 다윗 후손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유다인만이 다스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들의 항전은 일종의 신앙행위였다. 66년에서 70년 사이에 펼쳐진 독립운동에서 이들은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로마의 폭력에 시달리던 민중은 그들을 지지했다. 따라서 로마제국은 열혈당원을 체포하면 공개적으로 십자가형에 처했다.
예수님의 양옆 십자가에서 처형된 ‘강도 두 사람’도 실제로는 강도가 아니라 열혈당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마르코 복음 15장 27절에 나오는 ‘강도’는 희랍어 레스타이(lestai)의 번역인데 이 단어는 로마인들이 열혈당원을 지칭할 때 사용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하나였던 가나안 사람 시몬은 확실한 열혈당원이었다(루카 6,16). 스승을 배반한 ‘유다 이스카리옷’(Judas Iscariot)도 ‘시카리 유다’에서 유래된 명칭으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열혈당의 극우분자였던 시카리 출신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2011년 6월 19일 삼위일체 대축일(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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