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 할라카
할라카(Halakah)는 히브리어로 ‘가다, 걷다’의 뜻을 지닌 할라크 동사의 명사형태다. 일반적으로 길, 규정 또는 종교적 규칙으로 번역되고 있다. 할라카와 율법은 다르다. 율법은 글자 그대로 ‘지켜야 할 법’이다. 십계명에 근거를 둔 계율이기에 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할라카는 진리 수준은 아니다. 다시 말해 바뀔 수 있는 여백이 있다. 할라카의 등장배경은 다음과 같다. 우선 율법은 불변이다. 바뀔 수 없다. 하지만 율법에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 현실은 바뀌기 마련이다. 따라서 ‘불변의 진리’를 ‘가변의 현실’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이 질문에 공적으로 대처한 것이 할라카의 출현인 것이다.
안식일에 관한 예를 보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그날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탈출 20,10) 성경의 이 말씀은 율법이다. 하지만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무엇인지는 누군가 해설해야 한다. 그리고 해설은 역사적으로 조금씩 바뀔 수 있다. 이것이 할라카인 셈이다. 훗날 유대인들은 할라카를 ‘구전 율법’으로 받아들였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조상들의 전통’이라고 했다(마태 15,2).
할라카 즉 구전 율법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뒤였다. 민족의 시련을 체험했기에 율법을 새롭게 해석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중심에 섰던 인물이 에즈라였다. “에즈라는 주님의 율법을 연구하고 실천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에서 규정과 법을 가르치기로 마음을 굳혔다.”(에즈 7,10) 위의 구절에서 ‘연구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다라쉬’다. 이 단어에서 율법 해석의 한 방법인 ‘미드라쉬’가 나왔다. 에즈라가 율법을 연구(다라쉬)했다는 것은 할라카를 내놓았다는 말과 같다.
신약의 세계로 건너오면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다. 하지만 말씀을 실천해야 할 현실은 바뀌기 마련이다. 주님의 말씀을 현실에 처음으로 적응시킨 분이 사도 바오로였다. 서간경에 등장하는 그분의 해설은 박해시대를 살아가던 교우들에게 신앙의 지침이 되었다. 박해가 끝나고 교회가 대형화되자 새로운 해설(할라카)이 요구되었다. 이 작업에 참여했던 인물들이 교부(敎父)들이다. 이후 교회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공의회는 교부들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2011년 8월 28일 연중 제22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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